최초입력 2025.06.11 06:28:05
문학과 웰니스의 만남 대세 트렌드로 북토크부터 필사까지 폭 넓은 활동중 호텔에 스며든 ‘텍스트힙’ 흐름 대표적 문학적 경험…읽는 라이프스타일 담다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있다”라고 언급하자마자 이 책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짧은 한마디가 실제 판매 흐름을 바꿨다.
요즘 아이돌 사이에서 책은 조용한 취미가 아니라 감각 있는 취향 표현으로 여겨진다.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허윤진은 방송 대기실에서 책을 읽고 필사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고 공항에서도 책을 들고 등장해 ‘공항 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이런 흐름 중심엔 ‘텍스트 힙’이 있다.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와 멋있다는 의미의 ‘힙’을 합친 말로 책을 읽는 행위를 스타일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문화를 말한다. SNS에 읽고 있는 책을 공유하거나 책 속 문장을 촬영해 올리고 도서 행사에 참석해 인증샷을 남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혼자 조용히 읽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읽고 공유하고 보여주는 시대다. 읽지 않는 사회라던 말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배우 한소희가 읽는다고 알려진 800쪽 분량의 철학서 ‘불안의 서’는 한때 품절되기도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언급한 ‘요절’은 18년 만에 재출간돼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 Z세대는 읽는 행위를 자기표현으로 활용하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다시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호텔 문화에도 반영했다. 스마트폰으로 늘 연결된 시대. 멀리 떠나는 일은 디지털로부터의 거리두기이기도 하다. 시인 오은은 “잠시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이 이동의 본질”이라 말했다.
강원도 정선 긴 길을 돌아 파크로쉬 리조트에 도착하면 120도 꺾인 건물이 맞이한다. 파크로쉬는 최근 야외 글래스하우스에서 북토크 프로그램을 열었다. 지난 5월 9일부터 이틀간 열린 행사 가운데 첫날, 직접 북토크에 참여했다. 첫 번째 북토크는 오은 작가가 맡았다.
오은 작가는 2002년 등단 이후 대중과 문학계를 오가며 활동을 이어온 인물이다. 유쾌한 언어감각으로 대산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강연에선 시집 ‘없음의 대명사’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 표지 색에 맞춘 작가의 오렌지색 양말까지 현장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웠다.
비가 촉촉히 내려 분위기는 깊어갔다. 유리 벽 너머로 초록이 번지는 오후, 참가자들은 숲을 배경으로 작가 강연을 듣고 소통하며 문학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은 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집에서 스스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구절을 고르고 그 문장에 얽힌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냈다.
이어진 시간엔 참가자 각자 감상을 나눴다. 누군가는 시를 읽고 떠오른 장면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비슷한 마음을 겪은 경험을 꺼냈다. 정해진 형식은 없었다. 자유롭게 말했고 듣고 공감했다. 창작 시간도 있었다. 작가 문장을 토대로 자신의 문장을 써보며 감정이 자연스레 흘렀다. 그렇게 90분이 지났다.
참가비는 3만원 남짓이다. 이 금액에 강연 도서와 더퍼블리셔 핸드크림 모두 포함이다. 퀴즈를 맞히면 파크로쉬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받는 시간도 마련했다.
북토크가 끝난 뒤에도 모두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문장과 공기, 여운이 오래 머물렀다. 마지막엔 모두 줄을 서서 작가와 사진을 찍고 책에 사인을 받았다. 김정남 HDC리조트 브랜드전략팀 담당자는 “파크로쉬는 앞으로 분기마다 북토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토크는 책 한 권을 두고 깊이 있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다. 영국 서식스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독서는 스트레스를 최대 68%까지 줄이는 효과가 있다. 파크로쉬는 북토크에서 참가자가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북토크는 어렵지 않았다. 프라이빗한 구성으로 낯선 이들과도 금세 마음이 열렸다.
파크로쉬는 최근 2층 라이브러리 공간을 새롭게 단장했다. 전문 독립 출판사 ‘읻다’와 함께 큐레이션한 350여 종 도서를 비치했다.
시, 소설, 인문 등 문학 중심 서적은 물론 웰니스 4대 테마(Eat Well, Move More, Stress Less, Love More)를 기준으로 한 도서도 포함했다.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책 두께도 조정했다. 가볍게 들고 앉아 여유롭게 완독할 수 있는 분량으로 독서를 통해 진정한 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라이브러리는 24시간 운영한다. 머무는 동안 언제든 원할 때 가장 조용한 시간에 책을 펼칠 수 있다.
라이브러리 한편에는 필사 공간도 마련했다. 마음에 닿은 문장을 따라 써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을 단련하는 시간이다.
좋은 문장을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는 과정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는다. 어휘력과 표현력뿐 아니라 마음의 근력까지 단련하는 시간이다.
파크로쉬는 문학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운영한다. ‘도슨트 사운드 콘서트’는 소리로 감각을 다독이는 사운드 웰니스 프로그램이다. 테마별로 엄선한 명곡에 전문 성우 해설을 얹어 음악과 설명이 번갈아 흐르는 무인 감상회 형태로 약 50분간 운영한다. 곡이 재생되기 전, 작곡가 생애와 시대 배경과 감상 포인트를 짚어준다. 매월 테마는 바뀐다. 6월은 일본 뉴에이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다.
공간은 1층 야외 글라스하우스다. 전면 유리창을 통해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외부 풍경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천연 목재와 화분 등 자연 소재로 마감한 구조에 메이어 사운드 스피커 2종을 설치했다. 메이어 사운드 스피커는 세계 유수 공연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다. 도슨트 사운드 콘서트는 매일 세 차례(오후 12시, 4시, 9시) 운영한다. 회차당 20명까지 입장 가능하다. 음료는 반입할 수 없다.
G층에 자리한 아틀리에도 새롭게 구성했다. 아티스트 마마콤마의 ‘오늘의 얼굴’ 시리즈를 포함해 자연과 힐링을 주제로 한 작가 작품 13점을 전시했다. 눈길을 끄는 작품도 여럿이다.
2018년에 그린 ‘아바’는 주근깨와 입술 주름 같은 섬세한 디테일로 무표정한 얼굴 속 감정을 담았다. 2020년 작품 ‘멜리샤’는 자유로운 선과 대담한 색으로 개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아틀리에 중앙에는 투숙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컬러링 공간도 마련했다. 도안 위에 자신만의 색으로 직접 채워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다.
리조트 로비 한쪽에서는 쿠션, 컵, 노트, 양말 등 일상에 감각을 더해줄 소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협업 1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테이블 매트는 총 여섯 가지 디자인으로 구성했다. 방수 기능과 미끄럼 방지 처리까지 더해 테이블 장식품이나 마우스패드로도 쓸 수 있다.
2층 웰니스클럽에서는 ‘조이풀 플로우’를 운영한다. 조이풀 플로우는 요가에 호흡 명상을 더한 심화 클래스다. 매주 금·토 오후 3시 30분부터 60분간 진행한다.
정선(강원)=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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