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10 15:08:20
살다 보면 상대방이 내 생각엔 기본, 그러니 꼭 말로 안 해도 알아야 마땅한 걸 도통 못 알아먹거나(이럴 땐 꼭 ‘먹다’란 보조동사까지 붙여줘야 한다),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가 싶어 서운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답답함에 울화통까지 치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 깨자. 말 안 하면 모른다. 절대로.
필자의 최근 경험담 하나 털어놓자면, 본 매체에 기고를 하게 된 사실이 기쁘고 (과장 좀 보태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져 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기회에 게재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반응이 참으로 생뚱맞다. 엄마는 언제부터 글이 실리냔 팩트 체크만 할 뿐. 심지어 아빠는 묵묵부답 밥만 드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또 당하니(!) 서운했거니와, 그냥 넘어가면 내 서운한 마음이 더 서운해하겠다 싶어 타박을 좀 했다.
“근데 가만 보면 우리 엄마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참 칭찬이나 감탄엔 인색하셔~ ‘잘 했네, 잘 됐다~’ 해주심직 한데 그런 게 없으니 이게 좋은 일이 아닌 건지, 아니면 더 잘 해야 성에 차시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제서야 엄마는 정곡에 찔린 듯 민망한 웃음에 박수까지 얹어 “그래그래, 맞네. 잘 됐네~” 하신다. 엎드려 절받기가 따로 없다. 그럼 아빠는? 눈이 동그래지셨지만 또 묵묵부답. 아이고, 아부지~
앞서 전문가랍시고 잔뜩 힘을 주며 ‘말을 해야 안다’고 강조했지만, 고백하건대 필자도 평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인색한 편이다. 대체로 감정들이 한 템포 정리되어 그 강도가 절반 정도는 떨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히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 나이에 부모 탓을 하는 게 좀 치사하긴 하지만, 이런 성격 형성엔 (죄송하지만)부모님 몫도 있단 말이다. 그만큼 누구에게건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입 밖의 말로 꺼내는 데는 성장 배경과 같이 오랜 경험을 통해 견고해진 자신만의 소통 방식을 뚫는 힘, 그리고 상대의 모든 반응을 일단 감당하겠노란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사람은 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내 생각엔 당연한 세모(△)도, 상대에겐 네모(□)로 경험될 수 있다. 그러니 상대에게 세모(△)의 언행을 바란다면? 엎드려 절 받기라고 구차하게만 여길 게 아니라, 또 상대방이 잘 모른다고 답답해만 할 게 아니라, 세모라고 ‘굳이’ 콕 집어 말하고 ‘정확히’ 요청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유사한 세모꼴의 답을 들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의 엔딩은, 그 날 밤 늦은 시간에 도착한 아빠의 메시지로 맺어본다.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그대로 옮겼다. “오늘 막내와 같이 저녁 잘 먹었다. 막내 변 작가, 축하한다. 계속 전진하도록” 와아, 아부지~
[글 변시영(상담심리전문가(Ph.D). 『마흔,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저자) 일러스트 프리픽]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3호(25.06.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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