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0주년 자서전 '나는 배우다' 낸 송승환 아역 배우·청춘 스타 출신 난타·평창올림픽 성공 뒤에 집안몰락·시력장애 등 시련 "불편함이 불가능은 아냐 좀 느리게 산다고 생각할뿐 무대서 노역으로 죽고 싶어" 내달 11일부터 사진전 개최
배우 겸 감독 송승환이 최근 서울 대학로 PMC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이충우 기자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었지만, 결국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더라고요."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송승환(68)은 데뷔 60주년을 맞아 인생의 굴곡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8세 아역으로 출발해 청춘스타로 급부상했으나, 가세가 기울며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고, '난타'와 평창올림픽 총감독으로 재기했으나 시력 장애라는 새로운 벽에 부딪힌 그의 삶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극적이다.
23일 출간 예정인 자서전 '나는 배우다, 송승환'(뜨인돌)에서 그는 "비현실적 설정과 극단적인 롤러코스터 인생! 미리 읽었다면 단박에 거절했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고 고백한다. "대본엔 기승전결이 있고,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내 인생은 리얼리티가 없죠. 갑자기 망하고 갑자기 스타가 되고, 하루아침에 주인집 아들에서 단칸방 아들이 된 적도 있어요."
인생의 첫 시련은 중학교 1학년 때 찾아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단칸방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지면서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취업을 위해 한국외대 아랍어과가 입학했으나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중퇴 후 연극계에 뛰어들었다. 다행히도 김수현 드라마와 음악방송 '젊음의 행진' MC로 스타 반열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사업 실패로 재산을 모두 잃으며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20대에는 돈보다 공부도 하고 경험을 쌓아야 했는데 스타가 돼서 돈 버는 일에만 치중하고 산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약혼한 아내와 뉴욕에서 4년을 살았는데 그때가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가장 행복한 시기였어요."
귀국 후 그의 인생 시계는 다시 빨라졌다. 극단 설립과 변진섭,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 강수지 '보랏빛향기' 제작으로 다시 성공 궤도를 달렸다. 모든 것을 쏟아 창작 뮤지컬 '고래사냥'을 올렸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했지요. 흥행 실패는 아니었지만 빌린 돈을 다 갚고 나니 남는 게 없었어요. 너무 허무해 안 되겠다 싶어 세계시장을 노렸어요." 이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PMC프로덕션과 최초의 비언어극 '난타'다. 1997년 무대에 처음 올렸으니 2년 뒤가 30주년이다.
"제가 정리정돈을 좋아해서 난타가 몇 개국 몇 개 도시에서 공연됐나 봤더니 61개국 326개 도시를 누볐더군요. 이 기록은 BTS도 못 깰 겁니다." 누적 관람객 1550만명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난타는 전용극장 3곳에서 다시 흥행 신화를 쏘고 있다. 중국 단체 관광객 일색이던 관람객 구성이 코로나 이후 미국·유럽이 50%, 동남아가 30%를 차지하며 다변화됐다. 개인 관객이 많아지며 매출과 수익성이 개선됐다.
2018년 평창올림픽 성공 이후 그의 삶엔 더 이상 불운과 절망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고 했던가.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이 함께 찾아온 것이다. "국내외 망막 전문가를 찾아다녔죠. 그러다 2019년 초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미국에서도 치료 불가 판정을 받던 날, 밤새 혼자서 펑펑 울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운 밤이었죠."
절망은 길지 않았다. "하룻밤 울고 툴툴 털고 일어났어요. 안 되면 할 수 없지 뭐. 의술이 안되면 기술로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지요." 그의 최신형 아이패드엔 리모콘 사진과 상대 배우 얼굴 사진이 찍혀 있다. 사진을 확대해 보기 위해서다. "조금 불편한데 그래도 안 될 것은 없어요.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옛날만큼 일을 많이 하지는 않으니까 조금 느려진 것뿐이죠. 새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에게 불편함은 결코 불가능이 아니다. 그의 인생철학은 간결하다. "정말 속담처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더라고요. 지금 좌절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솟아날까, 솟아날 구멍을 찾는 일을 하면 됩니다."
오는 12월 연극 '더 드레서'로 무대에 복귀하고 내년엔 2인극 도전에 나선다. "연기하는 순간이 참 좋아요. 다른 무엇을 할 때보다 세상 골치 아픈 일을 다 잊고 몰입할 수 있지요. 연기하다가 생을 마치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60년의 발자취를 담은 사진전을 다음달 11일부터 계동 북촌스페이스에서 연다. "문화라는 게 뭘까요. 일탈이죠. 일상탈출. 사람들이 너무 정치에 다 함몰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문화를 통해 조금 한숨을 돌렸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