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엔 진보초란 거리가 있다. 진보(神保)라는 무사의 이름과 거리를 뜻하는 초(町)가 결합한 행정구역 이름이라고 한다.
진보초가 유명한 이유는 수십 곳의 고서점 때문이다. 1877년 최초의 서점이 만들어진 뒤 150년에 달하는 역사가 이어져왔다.
이런 진보초엔 참으로 '이상한' 책방이 하나 있다. 책방 이름은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 이곳은 우리가 아는 다른 서점과 운영 개념이 다르다. 서점 주인이 수십 명이어서다.
월 5500엔만 내면 책을 판매할 수 있는 책장 하나를 할당받는다. 일종의 숍인숍 혹은 공유형 서점이다. 한 달에 5만원이면 나도 '책방 주인'이 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상상력인가.
박순주 작가의 책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는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를 비롯해 진보초 서점들의 생생한 숨결을 담은 서점 기행기다.
저자는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를 이끄는 유이 로쿠로 대표를 만난다. 책에 따르면 주인장 유이 대표는 "어떤 사람에겐 불필요한 책이 다른 사람에겐 책 주인의 흔적이나 작가 사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책이 된다"는 생각으로 서점의 운영 방식을 고안했다고 한다.
파사주(passage)란 프랑스어로, 파리 아케이드 거리의 이름을 따왔고 그래서 책방 전체가 프랑스식이다.
서점 내 책장 골목에도 '거리' 이름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책장에도 '주소'가 생긴다. 가령 '발자크 거리 7번지의 가시마 시게루 책장'이란 식이다. 빅토르 위고 거리, 에밀 졸라 거리도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진보초의 독특한 또 다른 서점은 '로코서방'이다.
여기에선 마메혼(豆本)이라 불리는 책만 판다.
마메혼이란 한국어로 번역하면 '콩책'쯤 된다. 가로 2㎝, 세로 3㎝ 남짓한 책이 마메혼이다. 뭐든 작게 만드는 '미니어처 민족'인 일본에는 콩책 전문가가 상당수이고 이들은 장인으로 대우받는다. 저자는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마메혼 전문서점 로코서방 인상을 이렇게 기록한다.
"마치 내가 소인국 서점에 온 거인이 된 듯했다."
저자가 만난 로코서방의 니시오 히로코 대표는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기 싫어했고 공부할수록 마메혼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고 한다.
마메혼은 장인이 한 권 한 권씩 집중해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운데 바로 마메혼의 이런 치명적인 단점이 오히려 책의 희소성으로 이어져 소장 가치가 높다고 한다.
저자는 "마메혼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쓴다.
지성의 거리를 걷는 이방인의 들뜬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이 책은 도쿄 진보초를 본격적으로 다룬, 한국 유일의 르포르타주 서적이다.
일견 따분하다고 느껴지고 때로 외면까지 받는 책들을 두고, 바다 건너 인간들은 어떤 상상력을 펼쳤는지, 또 그 책을 널리 읽히게 하려 어떤 즐거운 몽상을 했는지를 이 책은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