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손가락의 중간쯤에 작은 혹이 생긴 환자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는 분으로 5년 전 폐암을 진단받고 서울 유명 대학병원에서 면역 치료를 하고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폐암 완치 후 건강한 삶을 이어 가던 그는 우연히 손가락에 생긴 혹을 발견한 후 제법 규모가 큰 지역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는데, 빨리 서울로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랐을까. 폐암의 기억이 있기에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의사 권유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빠른 진료가 가능한 병원들을 찾다가 내게 왔다며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찰상으로는 그다지 위험한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검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기에 그랬을까?'라는 생각에 가져온 MRI를 확인해 보니 정말 별것 아니었다. 흔하진 않아도 제법 발생하는 그저 그런 종류의 양성 종양이었다.
환자 편에 들려온 그쪽 병원의 MRI 판독지를 보니 내 생각과 같은 소견이 적혀 있었다. 그 어디에도 이 환자가 서둘러 서울의 대형병원에 와야 할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환자분께 거주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에도 문의했는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자신을 진료했던 의사 선생님이 서울로 바로 가라고 해서 적극적인 노력은 안 했지만, 예약을 해보려고는 했단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 예약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전공의 사직 후 지방 병원의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진료 예약이 매우 어렵고 까다로워지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내게서 별것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만족해서 진료실을 나가기는 했지만, 그 환자에게 지역 의료는 어떤 모습으로 각인됐을까. 폐암이야 어려운 병이니 서울에서 치료한 것은 그렇다 쳐도(이것도 말은 안 되지만) 간단한 병 하나도 판단하지 못하는 지역 의료로 각인되지 않았을까.
뼈나 근육의 종양을 전공하는 의사는 우리나라에 몇 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 한 명의 전문의도 없는 도(道)가 몇 군데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지역의 골종양 환자는 무조건 서울로 와야 하나.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소위 말하는 지역 의사를 늘리고 의과대학을 더 만들면 해결될까. 아닐 것이다. 아무리 늘려도 소수의 전문가가 지역에 균등하게 배치될 수는 없다.
이런 경우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원격진료다. 의료진 간에 원격으로 환자에 대해 논의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환자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고, 빈도가 적은 소수의 환자를 위해 고도의 전문가가 지역마다 있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굳이 거창하게 원격의료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어떤 의사 선생님은 사적 인연을 활용해 환자의 검사 결과를 카톡으로 보내고 내 견해를 물어서 진료하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조금만 이상해도 서울로 가라고 한다면 답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 해결책으로 공공부문을 활성화하고 의사 수를 늘려 지역에도 의사가 가기를 희망하는 것이라면 여전히 답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