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무릎이 아파 가까운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이 여러 방법으로 검사를 하고 알레르기, 가족력, 기타 복용 중인 약 등을 상세히 확인한 후 처방을 내렸다. 몇 년 동안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상세한 검사를 받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벌써 병이 반은 나은 느낌이 들고 매우 고마웠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간단한 질병도 이렇게 개인에게 특유한 질환이 있는지 등을 소상히 살피고 처방을 하는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 작업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잘 수렴하고 개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심도 있게 고민해 이뤄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요즘 들어 국가 경쟁력의 가장 근간은 기업 경쟁력이고, 이러한 기업의 지배주주, 소수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해 조정에 관한 근본법이 상법이므로, 상법을 개정함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고 기업 경쟁력이 저해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 기업들은 다른 외국 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우리 특유의 리스크를 많이 부담하고 있다. 이 리스크 중 가장 큰 것이 거의 우리나라에밖에 없는 배임죄의 존재다. 이 배임죄의 존재로 인해 이사들은 회사에서 의사 결정을 할 때 항상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법 리스크를 부담하고 있다. 소수주주들을 대변하는 이사들이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하나 또 한편으로는 이 소수주주들을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에서 건건이 시비를 걸며 다른 이사들을 배임으로 고소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 몇 번 고소를 반복하면 아마 이사회 업무는 쉽게 마비될 지경에 빠질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없으나 우리는 가능하다.
또한 외국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법으로 인정되는 포이즌필(Poison Pill),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 크라운주얼(Crown Jewel) 등이 우리는 인정되지 않거나 배임죄 등으로 인해 제한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고려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M&A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처분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자사주를 무조건 소각하라고 하면 적대적 M&A에 대항할 수단이 아예 없어질 수 있다.
혹자는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 자산인 자사주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하나, 회사에 있어 누가 지배주주로서 경영권을 가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지배주주의 변동에 대해 회사 비용으로 방어에 참여하거나, 실사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판례들이 있다. 특히 상장법인의 자사주는 회사의 현금성 자산이므로 이를 처분해 투자에 재원으로 사용될 필요성이 크다.
다행히 최근 들어 한꺼번에 상법을 개정하기보다는 합의된 부분만 먼저 개정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하다. 서둘러 진행하다가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고 이로 인해 국가 경쟁력이 흔들리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신중하게 각계의 논의를 모아 진행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