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예년보다 빠르게 시작된 데다 매우 심한 더위까지 예상된다니, 동물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주키퍼들 처지에서는 오싹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다양한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이 보호를 받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저마다 특성이 다른 동물들이 무덥고도 무더울 올여름을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맞춤형 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키퍼들은 자신이 돌보는 동물의 서식지 환경과 종의 특성에 대해 잘 이해하면서, 그에 맞는 보살핌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본래 살아가는 곳이 사막처럼 더운 지역이나 얼음으로 뒤덮인 추운 지역, 혹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지역 등 다양한 서식지를 바탕으로 한 여러 동물이 모여 사는 주토피아인 만큼,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그러므로 각 동물의 특성에 맞는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과 범위 안에서 온도나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이고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고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야생동물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같은 보너스가 된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의 사자는 뜨거운 낮에는 주로 그늘에서 쉬거나 잠을 자다가 비교적 시원한 새벽이나 밤에 사냥한다.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미어캣 같은 동물들은 한낮에는 굴속에 숨어 있다가, 이들 또한 아침이나 저녁에 나와서 활동을 하고, 코끼리는 큰 귀에 혈관이 많이 분포돼 있어 마치 거대한 부채처럼 귀를 펄럭이면서 열을 식히는 자체적인 기능도 있지만, 코로 물이나 진흙을 빨아들여 온몸에 뿌리면서 시원하게 지내기도 한다. 또 다리가 긴 기린은 뜨거운 지면과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 신체적으로 도움이 되면서 피부에 있는 얼룩무늬 아래의 복잡한 혈관망이 효과적으로 열을 방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을 위해 담당 주키퍼들은 굴을 팔 수 있는 흙더미와 몸을 담글 수 있는 풀장이나 진흙탕, 또 잠시나마 열을 식힐 수 있는 얼음 과일과 같은 것들을 수시로 제공한다.
그렇다면 내가 보살피고 있는 판다는 어떨까, 판다는 사계절 중에 불볕더위가 찾아오는 여름에 가장 취약하다. 그래서 판다도 야생에서 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현명하게 대처한다. 좀 더 시원하고 울창한 고지대로 이동해 그늘을 찾거나 시원한 표면의 나무와 바위, 바닥을 찾아 휴식을 취하면서 더위를 해결한다. 그리고 이들도 한낮의 더운 시간대에는 활동을 줄이고, 시원한 아침 일찍이나 해가 질 녘에 먹이를 찾거나 움직이는 데 좀 더 시간을 쓴다. 이런 습성의 판다를 돌보는 주키퍼들은 판다들이 지금의 더위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해주면서 가능한 한 시원한 시간대에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도 올라간 체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그늘과 물, 얼음 바위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주키퍼들은 잘 알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더위가 없다면 이들의 이런 신비한 능력은 발휘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따사롭고 시원한 날들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처럼 야생동물들도 알고 있는 듯하다. 특히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때마다 찾아오는 여름의 무더위라는 것은 어쩌면 겨울의 추위만큼이나 삶의 끈기와 인내를 시험받으며, 한계와 마주하고 내면의 깊이를 탐색하는 고독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니 뜨거운 여름도 온전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습성으로 각자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야생동물들처럼 우리 인간들도 저마다의 지혜로운 비법으로 시원하게 이 여름을 느끼고 이겨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