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2 13:07:38
대선정국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지만 얼마전까지 국회에서는 국민연금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연금개혁의 첫 단계로 모수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여전히 논란이 많으며, 향후 국민연금 구조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나 젊은 세대들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세대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연금은 크게 두가지 축이 있는데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수급 개시 연령 등 제도적 측면과 기금의 운용이다. 필자는 미적립 연기금의 운용에 대한 제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적 연금의 고갈을 늦추기 위한 기금 운용측면에서의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연금기금은 기금의 적립 상태에 따라 적립(funded)방식과 부과방식(underfunded 또는 Pay-As-You-Go: PAYG)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적립방식이란 자산규모가 부채 규모와 같거나 많은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부채는 연금 가입자에게 장래에 지불해야 할 ‘책임준비금’ 개념으로 연금충당부채 산정방식에 따라 보장급여부채(Vested Benefit Obligation: VBO), 누적급여부채(Accumulated Benefit Obligation: ABO), 예측급여부채(Projected Benefit Obligation: PBO) 및 지수연동급여채무(Indexed Benefit Obligation: IBO) 등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 연기금은 부분 적립 또는 미적립 방식의 기금이라고 할 수 있다. 군인연금에 이어 공무원연금도 이미 매년 정부의 보전금을 지원받아 연금급여에 충당하고 있으며, 사학연금 및 국민연금은 20~30년 내에 고갈된다고 한다. 부과방식에서 기금의 경제적 역할은 ‘지불준비금’ 기능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으며 완전적립방식에서는 ‘책임준비금’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나라 연기금뿐만 아니라 일본의 공적연금인 GPIF 등 세계의 많은 연기금들은 장기적으로 부과식(PAYG)으로의 변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이러한 논의가 일부 있으나 더 늦기 전에 연금제도 개혁을 하고 기금운용 측면에서 혁신을 한다면 부과식(PAYG) 전환을 일본보다도 훨씬 늦출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최고운용책임자(Chief Investment Officer: CIO) 출신으로서 기금 운용측면에서의 개혁을 제안하고자 한다.
1984년 이전까지 미국 연방공무원연금(Civil Employees’ Retirement System: CSRS)는 미적립 연금이었으나 법을 바꾸어 1984년 이후 가입자부터는 완전적립식 연금(Federal Employees’ Retirement System: FERS)으로 변경하였다. 완전 적립이 가능한 이유는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인 특별채권(special-issue bonds) 때문이다. 연방신탁기금인 CSDRF(Civil Service Retirement and Disability Fund)의 수입은 연방공무원의 기여금과 연방기관의 부담금 및 기금의 국채 투자 이자수입이며, 연금급여 부족분은 연방정부의 보전금으로 충당된다. 원칙적으로 기금은 모두 국채에만 투자되어야 하며 이 채권은 정부의 예산권한(budget authority)을 의미하는 것으로 회계상으로만 정부의 부채로 잡히고 실제로 발행되는 것은 아니다.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면 세수나 국채를 발행하여 상환해야 하나 대부분 신규채권으로 연장(rollover)하는 형태로 이루어 진다. 일부 제한적으로 유가증권 투자가 허용되기는 하나 국채 수익률 이상의 수익은 반드시 연금 지급에만 사용되어야 하며, 최근에는 기금의 수익률 향상을 위해 국채 외에 유가증권 및 대체자산에 대한 투자확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지금부터라도 매년 일정 금액(예: 10조)의 특별채권을 발행하여 기금에 투입하면 그 금액만큼 대한민국 국채를 투자하지 않고 주식이나 신용채권 또는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운용 수익률이 높아진다. 매년 10조원씩 기금 규모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운용수익률이 높아지면 기금의 고갈 시점이 이연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지급이자 외에는 세금 징수나 직접 채권발행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구축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신용등급은 일본보다 높고 G7 국가 가운데 중간이며, 국가부채비율은 팬데믹을 겪으면서 10%이상 상승했으나 여전히 가장 낮기 때문에 적극적인 재정정책 실행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속적인 출생률 하락은 향후 재정적자 증가 및 국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기금에 대한 재정지원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피부양 인구 감소로 부과식(PAYG)제도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미래세대에게 전가할 국민연금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한 노력으로 현 세대가 국가 재정에서 일부를 미리 부담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불안을 덜어주는 방안이라고 본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은 정부 재정으로 매년 일정금액(예: 10조)을 기금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최근 5년 평균수익률은 8.13%이고 설립부터는 6.82%이며, 공무원연금도 최근 5년은 5.48%, 10년은 5.05%이다. 반면 30년만기 국채의 최근 10년 평균 금리는 2.45%로서 운용자산과 국가의 신용등급에 차이가 있어 양자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운용수익률의 레버리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필자의 박사논문 연구에 따르면 금융자산 8.9조인 공무원연금의 경우 상향된 목표수익률(5.48%) 달성을 위해 공격적 자산배분을 할 경우 장기추계 만기 시점인 2075년부터는 정부 보전금 없이 기금 운용수익률과 정부 및 공무원 기여금만으로 연금급여를 충당하는 수준(steady-state funding)까지 기금 규모가 증가한다. 만약 장기채 발행을 통해 일시에 5조원 가량을 투입할 경우에는 장기 목표수익률이 4.93%로 하락하여 안정적 자산배분이 가능해지고 완전적립(pre-funded) 시점도 앞당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연금의 스폰서인 기업과 같이 공적 연금에서도 스폰서 또는 준(準)스폰서에 해당하는 정부가 특별채권이나 장기 국채를 발행하여 기금에 투입하면 기금규모 증대와 운용수익률 제고가 동시에 이루어지므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현재 세대가 일부 부담함으로써 세대간 불평등 문제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박천석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고문(새마을금고중앙회 전CIO,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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