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의 목적은 목숨 건 헌신 심리 꿰뚫는 가사들 놀랍고 선동의 문법 제대로 보여줘 우리사회속 군가 같은 화법 미혹되지 않을 소양 필요해
군대가 아니라면 군가(軍歌)를 줄곧 들으려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가 어느 계기로 군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가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겠지만 그것의 최종 목표는 '네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라'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 최종 목표에 도달하는 군가의 가사는 웃음이 나오는 것부터 허무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처음 들을 때 실소가 나오는 군가는 프랑스 혁명 시대의 군가로 '양파의 노래(Le chant de l'oignon)'다. 이 군가의 가사는 처음에 가볍게 들린다. 기름에 튀긴 양파가 맛있다는 말부터 시작해 그 양파를 먹으면 자신들이 사자가 된다고 허세를 떠는 것이다. 3절에 이르러서 오스트리아 '놈'들, 그 '개자식들'에게는 줄 양파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가사의 가벼움에 이게 무슨 군가인가 하다가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작사가에게 감탄하고 말았다.
전쟁은 거대한 명분이 필요한 일이지만 한 개별적인 인간에게 이 군가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맛있는 양파 하나에 목숨을 걸만 하고, 그 양파 하나에 인간은 사자처럼 다른 생명을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으며, 그 맛있는 한 개 남은 양파를 오스트리아 놈들에게 줄 수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웃으며 들었다가 가만히 따져보니 이 군가는 유쾌하게 인간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웃음과 반대편에 허무주의 풍의 군가도 있다. 군대는 행진하는 힘을 내야 하는 것인데 군가에 허무주의가 웬 말인가 의아할 분도 있지만 일본제국주의 군가 중에 '바다에 가면(海行かば)'이라는 군가가 그러하다. 바다에 가면 물 젖은 시체가 되고, 산에 가면 풀밭에 놓인 시체가 될 것이나 일본 왕을 위해 죽는다면 후회가 없으리라는 것이다. 곡조 또한 장송곡과 같은 가락이라 기어코 살아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거세한 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말라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군가로 들린다. 이것 역시 한 개인의 목숨이라는 것이 별것 없고 어차피 죽는 것이니 대군(大君)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는 투다.
위의 두 군가 모두 인간이 목숨을 거는 혹은 체념하는 심리를 잘 파악한 것이지만 내가 접한 군가 중에 최고는 제정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현대 러시아에서 모두 사랑을 받은, 아갑킨이 1912년에 작곡한 '슬라브 여인의 작별(Прощание славянки)'이다. 처음과 두 번째 군가도 나름의 수준이 있지만 절정은 1997년 민갈료프의 것이다. 곡조와 가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꼭 들어 보셨으면 한다.
그 대략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러하다. '우리에게는 빛나는 과거와 부유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신성한 땅의 풍요를 외부의 적, 그리고 그것과 내통한 내부 배신자에 의해 손실당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궁핍한 이유다. 그 악마 및 악마와 결탁한 배신자들과의 전쟁에 우리는 나서야 한다. 노예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전쟁이다.'
그러면서 군가는 청중에게 러시아에서 흔한 이름이자 전설적 영웅의 이름을 외친다. "일리야는 어디에 있는가? 도브리냐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듣고 나서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선동 수사학의 교과서였고,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 여전히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혹은 그들보다 먼저, 아니면 그들 대신 너희들을 죽게 만든다고 말이다. 모쪼록 우리 사회의 '군가'에 미혹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