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 제1과제는 입시지옥이 아니라 망국적 '의대 열망' 해소 세계적 공대 몇 개가 더 급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쓴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안다. 최근에야 이 책을 구해 읽었다. 재미와 통찰이 느껴지는 책이지만 '글쎄' 하게 되는 대목도 있다.
책은 9개의 지방거점대학을 관악 서울대와 함께 모두 '서울대'(혹은 한국대)로 명명하고, 1에서 10까지 번호로 구분하며, 지금 서울대에 버금가는 예산을 각각 투자해 연구중심대학으로 키우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진학에 인생을 거는 입시 지옥도가 완화되고 교육 인프라는 전국에 분산되며 더 중요하게는 '서울대 콤플렉스'에서 지금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서울대를 9개 더 만들면 SKY·인(in) 서울 병목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전망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러나 유의미하게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입시문화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것이 이재명 정부의 최우선 교육 과제가 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한국 교육이 꺼야 할 제일 급한 불은 인재의 의대 편중이라 생각한다. '의대 공화국'은 특정 직업군이 최상위 인재를 독점해 한 사회가 유지·발전해나가는 데 필요한 균형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서울대 공화국'과 부작용의 양상이 다르다. 서울대 독점이 공동체의 존재 양식 문제라면 의대 쏠림은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은 의사에게 주어지는 경제적·신분적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으로 이 같은 조정을 꾀했으나 실패했다.
다음은 이공계를 인위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상위 이공계 진학자의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생활비를 대주고, 개발도상국 천재 유학생을 받고, 몸값 비싼 외국 석학을 교수로 불러오고, 국가 연구기관 연구원들의 연봉을 확 올릴 수도 있다. 이렇게 한들 전교 1등이 다시 공대에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국가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한 달 회견에서 '제일 자신 없는 과제'로 의료 문제를 꼽았다. 의대 정원 조정을 통한 인재 균형 확보는 앞으로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공계에 돈을 쓰는 수밖에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 돈을 세계적 공대 3~4곳 육성에 투자하는 게 맞는다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10개의 서울대'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김 교수 본인도 성공한 지방대 모델로 캘리포니아 공대를 들고 있다. 또 서울대 10개를 각자 가장 유망한 분야로 특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이를 '서울대'라는 이름으로 전국 10곳에 고루 분산시키자는 것이고, 필자는 어디가 됐건 의대보다 위상이 높고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하는 공대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방이면 더 좋다. 그런데 지방에는 이미 유망한 공대가 있다. KAIST, 포스텍, 울산과학기술원…. 이들 학교에 투자해서 키우면 되지 서울대에 무슨 포한이 졌다고 10번까지 늘린다는 말인가.
서울대를 늘려서 '서울대 스트레스'를 줄이자는 말의 뜻은 알겠다. 그러나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이 제각각인 것처럼 사회도 그렇다. 서울대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에는 문벌·학통에 따른 차별과 독점이 있었다. 아주 심했다. 서울대 학위가 저렴해지면 한국인의 차별화 욕망이 순화돼 마침내 더 행복해지겠는가. 독일에는 대학 간 차별이 거의 없지만 영국에는 있다. 독일은 영국보다 행복한 사회인가. 한국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대학 위계를 완화하기 이전에 의대에서 공대로 위계를 역전시키는 조정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서울대 열망에 앞서 과도한 의대 열망부터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