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새벽 3시만 되면 타닥타닥 공포의 발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렀다. 검은 그림자는 "엄마, 더워"라며 나른한 탄식을 뱉었다. 뭐가 덥냐고 타박하며 아이 이마를 짚어보면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에어컨을 밤새 풀가동했다.
어린이는 밤 더위를 더 탄다. 기상청에 따르면 8일 새벽 기준 어린이가 느끼는 온도는 일반 성인이나 노인보다 1도 더 높았다. 어린이보다 더 체감온도가 높은 사람은 취약거주환경 거주자다. 이들의 새벽은 밤새 31~32도를 웃돈다. 8일 자정 체감온도는 34도까지 치솟아 '경고' 단계로 예보됐다.
일각에서는 냉방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더위에 취약해졌다며 '정신무장론'을 제기한다. 에어컨 보급률이 2023년 기준 98%에 육박하는 탓이다. 하지만 부족해진 건 참을성이라기보다 시원한 밤이다. 1975~1984년 연평균 4.6일에 불과하던 열대야는 최근 10년간 11일로 늘었다. 서울은 지난달 29일 이후 밤이 무덥다. 밤기온이 30도가 넘는 초열대야도 강릉에서 이달만 벌써 세 번째다. 1년 만에 시기가 한 달 당겨졌다. 무덥고 습한 공기가 정체돼 뚜껑을 덮은 냄비처럼 푹푹 찐다.
더위가 극한으로 가면 잠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다. 전국적으로 첫 폭염특보가 발효된 7일 대구 기온은 올 들어 가장 높은 37.4도, 경북 안동은 39.2도까지 치솟았다. 돼지 1만여 마리, 닭과 오리 12만마리가 폭염에 폐사했다. 온열질환자도 이미 7명 발생했다.
무더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도로 물청소와 스마트 그늘막, 무료 생수자판기 아이디어를 내놨다. 하지만 제일은 동남아를 여행할 때처럼 해 떠 있을 때는 최대한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일이다. 밤에는 불나방처럼 에어컨 앞으로 모여야 한다.
어떤 현상은 낭만적인 이름 뒤에 치명적인 속성을 자꾸 숨긴다. 익충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러브버그나, 여행지의 들뜸과는 무관한 열대야가 그렇다. 올해는 열대야가 아닌 밤을 세는 게 빠를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든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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