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자산 쏠림 극심 돈의 물줄기 증시로 돌려야 불붙은 집값도 안정시키고 경제체질도 바꿀 수 있어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은 '극약처방'에 가깝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묶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6개월 내 실입주를 의무화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은 원천봉쇄했으며, 조건부 전세대출도 막아 갭 투자까지 차단했다. 돈줄을 죄어 '영끌' '패닉바잉' 등 투기성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15억원 이상 주담대 금지'에 버금가는 '매운맛 규제'다. '잽' 대신 '강펀치'를 날린 것은 28번의 대책에도 집값을 잡지 못했던 문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다.
고강도 대출 규제는 단기적으로 시장 과열을 식히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요 억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격 상승 압력은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는 문 정부가 시도했던 다주택자 세금 중과나 대규모 신도시 조성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 집값 안정을 위해 남은 선택지는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다. 문 정부는 이를 '집값 자극 요인'으로 간주해 외면했지만 임대주택 확보와 강남권 공급 확대가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카드다. 개발 이익 환수 등 합리적 장치를 병행한다면 재건축·재개발은 도심 공급의 실효적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고, 이는 국가 정책 역량 소모로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 역시 출범 초부터 부동산에 발목이 잡힌다면 국가 미래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집값을 잡는 데 그치지 말고,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돈의 물줄기를 바꾸는 구조적 처방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부동산 불패 신화'에 사로잡혀 왔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닌 '투자의 수단'이 됐고, 이로 인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값 변동이 소비와 경기, 출산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형적 구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한국거래소를 찾아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자산시장의 구조적 병목을 정확히 짚은 발언이다. 한국 가계 자산의 70~80%는 부동산에 묶여 있다. 주식·펀드 등 금융자산이 절반 이상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돈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돌리는 것은 단순한 자산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경제 체질을 바꾸는 작업이다. 주식은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생산적 자산'이다.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수월해지고 이는 연구개발, 고용, 설비 투자로 이어진다. 금융이 실물경제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제시하고,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환원 확대에 나선 것도 긍정적인 흐름이다. 다만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균형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실제로 증시 부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고객 예탁금이 70조원에 육박하는 등 증시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고무적인 신호다. 이는 정책 방향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동시에, 자산 흐름 전환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주식은 유동성이 높고, 소액 투자도 가능해 자산 증식의 문턱을 낮춘다. '강남 아파트'라는 좁고 가파른 계층 상승의 사다리 대신, 더 많은 이에게 열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자산 양극화 해소와 노후 빈곤 완화, 복지 재정 부담 경감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부동산에 쏠린 자산의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은 요원하다.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왜곡된 구조에서 벗어나 금융 선진국으로 나아갈 결정적 전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