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27 13:16:40
카라바조의 팜파탈 ‘필리데 멜란드로니’
카라바조가 1592년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직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정물화를 그리고 있었다. 정물화에서 인물화로 방향을 틀고, 특히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 절망, 결의를 표현하도록 도와준 렌즈가 필리데 멜란드로니다. 그녀는 시에나에서 1581년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죽어 어머니, 오빠와 함께 1593년 2월 겨울비가 내리는 날 로마에 도착했다. 필리데의 친구 안나 비안키니도, 그녀의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해 동일한 마차를 타고 로마에 왔다.
필리데와 안나의 가족은 비아 델라르마타라는 지역에 함께 살았다. 이들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자신의 딸들을 로마 뒷골목으로 내몰아 창녀로 일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필리데는 당시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창녀가 되었다. 그녀는 로마 부촌에 집을 마련했고 이름난 추기경과 은행가들이 들락거렸다.
필리데는 로마 귀족인 라누키오 토마소니의 연인이 되었다. 토마소니는 귀족이었지만 필리데를 관리하여 화대로 연명하는 포주가 되었다. 1599년 2월 당시 로마 경시청 기록에 의하면, 필리데 집에서 무기를 사용하며 싸우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후 로마 교황청은 필리데를 ‘말썽 부리는 창녀’로 낙인찍고 교회 만찬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카라바조와 필리데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그가 1606년 5월 28일 밤에 로마를 떠나 방랑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 이유는 필리데의 포주 토마소니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토마소니는 화대를 지불하지 않고 필리데와 오랜 시간 만나며 그림을 그리는 카라바조에게 밀린 화대를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성격이 불같은 카라바조는 칼을 들고 토마소니를 거세하겠다고 달려들어 그의 허벅지 대퇴동맥을 찔렀다. 토마소니는 과다 출혈로 죽고 카라바조는 로마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창녀이자 애인인 필리데를 통해 인간 심리에 내재한 선악과 미추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필리데를 1598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시켜 그리기 시작한다. 필리데는 카라바조의 ‘마르다와 막달라 마리아(그림 1)’라는 그림에 처음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언니 마르다는 동생 막달라 마리아에게 길거리 생활을 그만두라고 종용한다. 필리데는 막달라 마리아로, 그녀의 길거리 동료인 안나 비안키니는 마르다로 등장한다. 얼굴이 어둠에 반쯤 잠긴 마르다는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세면서 막달라 마리아가 회개해야 할 이유를 열거한다.
마르다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회개하라고 종용하고 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이미 신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순결을 의미하는 오렌지 꽃을 정성스럽게 들고 있다. 그녀는 다정한 눈빛으로 마르다를 보며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 앞 책상 위에 놓인 중간에 이빨이 빠진 노란색 머리빗과 책상 끝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거대한 볼록 거울은 그녀의 과거 애장품이다. 그녀는 왼손으로 커다란 볼록 거울을 세워 불안하게 들고 있다. 거울은 자신의 삶을 선명하게 볼 수 없는 장애물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만,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절망·결의에 관심
당시 거울은 유리가 아니라 구리를 닦아 만들었기 때문에, 거울은 거울을 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둡고 왜곡되게 반영했다. 거울을 위험하게 잡고 있는 마리아 왼손의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 이 반지는 그녀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고결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의 상징이다.
카라바조가 필리데를 주인공으로 묘사한 다른 그림은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다. 구약성서 ‘유딧서(가톨릭 성서에 포함되어 있음)’에 등장하는 유딧은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술에 취하게 만들어 목을 자른다. 유딧은 유대의 산악도시 베툴리아에 살고 있던 정숙한 과부였는데, 홀로페르네스가 지휘하는 아시리아 군대가 베툴리아를 함락하자, 스스로 아름답게 화장하고 홀로페르네스에게 거짓 투항했다. 홀로페르네스와 단둘이 남게 된 유딧은 만취한 홀로페르네스가 잠들자 그의 칼로 목을 베어 하녀와 함께 머리를 주머니에 담고 달아난다.
‘유딧서’ 13장 6~9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 머리맡에 있는 침대 기둥 쪽으로 가서 거기 걸려 있는 그의 칼을 집어 내렸다. 그리고 침대로 다가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홀로페르네스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쳐 그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의 몸을 침대에서 굴러 내리고 기둥으로부터 휘장을 걷어서 치워버렸다. 잠시 후에 유딧은 밖으로 나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신의 하녀에게 주었다. 하녀는 그것을 곡식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기도하러 다닐 때처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진영을 빠져나와 거기 있는 계곡을 돌아 베툴리아산으로 올라가 마침내 베툴리아의 성문에 이르렀다.
카라바조는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포착했다. 유딧이 실제로 홀로페르네스 목에 칼을 대고 자르고 있는 순간이다. 인물들은 왼편에서 들어오는 조명을 받고 있다. 유딧이 홀로페르네스 목을 자르는 장면은 15~16세기 르네상스-바로크 화가들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제압하는 것처럼, 사회적 낙오자가 독재자를 압도하는 내용이다. 당시 산드로 보티텔치, 도나텔로, 아르테메시아 젠틸레시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주제로 그림이나 조각을 제작했다. 카라바조는 이 이야기를 멜로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로 그렸다.
여기 젊고 아름답고 신체적으로 약한 유딧이 무시무시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아당기면서 오른손으로는 홀로페르네스의 칼로 그의 목을 자르고 썰고 있는 끔찍한 장면이다. 하녀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담기 위해 두 손으로 자루를 잡고 있다. 이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에서 등장인물들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카라바조는 늙은 하녀의 냉혹한 만족감, 홀로페르네스의 충격, 그리고 유딧의 자세, 몸짓, 얼굴 표정 특히, 칼자루를 꽉 쥔 오른손을 통해, 그녀의 의연한 결의를 표현했다.
[배철현 더코라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6호 (2025.07.02~07.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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