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5 13:03:56
(9) 기업이 주도하는 비트코인 랠리
2025년 5월 22일, 비트코인 가격이 11만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비트코인 상승세는 단순한 투기 열풍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도적 변화와 기관 투자자들의 본격적인 참여, 그리고 급변한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강화되는 미국 친암호화폐 정책
ETF 출범…코인 유권자 표심 잡기
2024년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1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며,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 시장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이전까지 기관 투자자들은 세금, 회계, 커스터디(보관) 등 문제로 인해 비트코인 투자에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ETF 출현으로 이러한 장벽이 일거에 제거되면서 기관 투자자 참여가 급증했다.
같은 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은 비트코인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친암호화폐 인사들을 주요 정부 기관에 임명했다.
미국 상하원 또한 친암호화폐 성향의 의원 숫자가 과반을 넘기면서 친코인 법안들이 발의·제정되고 있다. 연방정부 뒤를 쫓아 16개 주 정부에서도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비축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뉴햄프셔와 텍사스주에서는 법안이 통과됐다. 암호화폐 생태계 성장이 코인을 투자하는 유권자 증가를 견인했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인들이 법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법 제도가 투자자 신뢰를 높여 다시 암호화폐 생태계가 커져가는 ‘선순환’이다.
기업도 비트코인 투자 가능해졌다
코인 가치 상승분, 재무제표에도 반영
2024년 말, 미국 기업회계기준이 변경되면서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자산 회계처리 방식이 달라졌다. 기존 미국 일반회계기준(GAAP) 아래서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무형자산으로 간주돼, 취득 원가에서 손상차손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회계처리됐다. 손상차손은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산의 가치가 장부가액보다 떨어졌을 때 이를 재무제표와의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경우에는 손실을 즉시 반영해야 하지만, 가치가 상승하더라도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12월에 ‘회계기준 업데이트’를 발표했고 이는 2024년 12월 15일 이후 시작되는 새 회계연도부터 적용됐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암호화폐 자산은 공정가치로 평가되며, 그 변동은 손익계산서에 반영됐다.
회계기준 변화는 기업의 재무제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비트코인 보유분에서 약 6억달러 이익을 2024년 4분기 순이익에 반영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보유하는 데 있어 회계 불확실성을 줄여줬고 기업들의 비트코인 매수 행렬이 이어지는 배경이 됐다.
블랙록, 피델리티, 스트래티지 등 주요 기관 투자자와 기업들이 비트코인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장 구조에 변화가 나타났다. 2025년 5월 기준, 스트래티지는 약 58만개 비트코인을 보유하며, 전체 비트코인 공급량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스트래티지 전략을 본떠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비축하겠다는 또 다른 새로운 기업이 탄생했다. 일본 소프트뱅크,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기업 테더 그리고 캔터피츠제럴드의 합작 회사인 ‘21캐피털(Twenty One Capital)’이 그 주인공이다. 약 40억달러 규모로 출범했다. 이 기업은 비트코인 100만개 확보와 관련 콘텐츠 생산, 비트코인 기반 금융 상품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21캐피털’뿐 아니다. 엑스알피(XRP) 발행사인 리플은 ‘히든로드’를 12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히든로드는 외환(FX),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스왑, 채권 등 다양한 자산군에 걸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대상 원스톱 플랫폼이다. 이러한 리플의 행보는 ‘기관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투자 비중 확대를 위한 움직임’으로 평가받았다.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도 유상증자,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비트코인 매입에 나서고 있다. ‘마라톤홀딩스’ ‘라이엇플랫폼’ 같은 채굴 기업은 5월 말 기준 각각 4만8137개, 1만9211개 비트코인을 보유하며, 보유량 기준 2위와 4위 기업에 올랐다. 트럼프미디어&테크놀로지그룹 역시 23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조달해 비트코인 보유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기업도 비트코인 비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메타플래닛’은 CD와 레코드 기획·제작, 숙박업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2024년 4월 비트코인 비축 전략을 발표한 뒤 4855개 비트코인을 사 모아 올해 5월 말 기준 주가는 7872%나 폭등했다.
메타플래닛 외 다른 일본 기업들도 최근 비트코인 매입에 집중하고 있다. 마케팅 기업 밸류크리에이션(Value Creation), 패션 회사 아납홀딩스(ANAP Holdings), 의료 기업 SBC메디컬그룹(SBC Medical Group), 게임사 에니쉬(Enish)도 비트코인을 유망한 디지털 가치저장수단으로 보고 매입에 나섰다.
비트코인 정보 제공 플랫폼 ‘비트코인트레저리넷’에 의하면, 2025년 5월 기준 비트코인을 보유한 세계 상장 기업 수는 114개로 증가했는데, 이는 2025년 4월 초 89개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글로벌 투자은행 번스타인(Bernstein)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 기업의 비트코인 도입이 빠르게 확산될 경우, 2029년까지 기업들이 보유한 비트코인 총액이 3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전망은 단순 투자를 넘어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기업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사주 소각은 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는 전통적인 주가 부양 전략이다. 앞으로 미국의 기업회계 규정이 글로벌하게 적용되면, 일부 기업은 자사주 소각 대신 비트코인을 매입해 재무 자산을 다각화할 것이다. 그것이 자사주 소각보다 주가 부양 효과도 더 크고 재무 자산 증가와 다각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헤지용 비트코인
미국 통화·재정 정책 리스크 완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4대 통화 발행량이 거의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러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와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비트코인의 ‘디지털 금’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일부 국가 중앙은행과 연기금이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포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비트코인이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의 통화 완화 정책과 방만한 재정 정책 역시 금과 비트코인 같은 달러 대체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은 단순한 투기적 현상이 아닌 제도적 변화와 기관 투자자들 참여, 정치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거시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추세는 비트코인이 전통 금융 시장에 통합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향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여전히 높은 변동성과 규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투자자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포트폴리오의 일부로써 비트코인을 고려하되,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가 중요하다.
결론은 현재의 흐름은 디지털 자산이 전통 금융 시장에서 중요한 자산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사실이다.
[홍익희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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