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5 13:38:03
오경석 두나무 신임 대표 내정자
국내 최대 디지털 자산(코인)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새 리더를 맞이했다. 2017년부터 두나무를 이끌어온 이석우 대표가 최근 돌연 사의를 표명하면서 신임 대표이사로 오경석 팬코 대표(49)가 내정됐다.
갑작스러운 대표 인사에 두나무는 물론 코인 업계 전체가 술렁인다. 오 신임 대표는 회계사와 법조인, 여기에 기업 경영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가 만들어나갈 새로운 두나무는 어떤 모습일지 관심이 쏠린다.
코인 최장수 CEO, 이석우 사임
임기 남았는데…사법 리스크 탓?
지난 5월 29일 코인 업계 전체를 뒤흔든 ‘빅뉴스’가 전해졌다. 2017년 12월부터 7년 넘게 두나무를 이끌어온 이석우 대표가 돌연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업비트를 국내 최대 코인 거래소로 성장시킨 인물로, ‘은둔의 경영자’ 송치형 두나무 의장 대신 전면에서 회사를 진두지휘해왔다.
최근 이 대표는 건강 문제 등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대표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입장문을 통해 “7월 1일부로 두나무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게 됐다. 사임 이후 회사에 고문으로 남아 일할 계획”이라며 “두나무의 더 큰 도약을 위해 새로운 도전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과 함께 개인적인 건강상 문제 등으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 많다. 이 대표 임기는 2026년 12월까지로 아직 1년 이상 남아 있는 상태였다. 코인 업계 최장수 CEO로 두 번째 연임에 성공하는 등 순조롭게 임기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최근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두나무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70% 넘게 오른 1조7316억원을, 영업이익은 85% 이상 증가한 1조1863억원을 기록했다.
검증된 리더십을 포기하면서까지, 대표이사를 교체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2025년은 업비트를 비롯한 두나무가 사세를 확장할 수 있는 적기로 평가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코인 투자 훈풍이 불어오고 있고 그간 이 대표가 이끌어온 코인 신사업도 가시화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국내 최대 경쟁자인 ‘빗썸’이 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올해 초 73%를 넘었던 업비트 국내 점유율이 5월 말 기준 60%대로 추락한 반면, 같은 기간 2위 빗썸은 24% 수준에서 34%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운데 단행한 대표이사 교체는 호재보다는 악재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올해 2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받은 제재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FIU는 두나무가 해외 미신고 코인 사업자와의 거래를 지원하고 고객 확인 의무를 수십만 건 위반했다는 혐의로 업비트에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결정했고 더불어 이 대표에게는 문책 경고를 내렸다. 두나무는 즉각 서울행정법원에 영업 일부 정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과태료 처분은 보류된 상황이다. 한 코인 업계 관계자는 “이 대표 개인 차원에서 내릴 수 있는 사임 결정은 아닌 것 같다. 대선 이후 FIU 중징계 처분이 본격화될 텐데, ‘사법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 대표 인사 교체가 단행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앤장 변호사 출신 세무 전문가
팬코 CEO…과거 두나무 감사로도
이 대표 후임으로 오경석 대표가 내정된 것 역시 사법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오 대표는 법조인 출신 인사로 기업 소송과 조세 자문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FIU 제재와 별개로 현재 업비트를 대상으로 한 국세청 조사 역시 진행 중인 만큼, 여기 대응하기 위한 인사로 오 대표를 선택했다는 추정이다.
이력이 독특하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해 공인회계사로 활동했다. 이후 사법고시를 통과해 수원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등을 거치며 법조인 경력을 쌓았다. 기업 경영 경험도 있다. 2016년 의류 기업 ‘팬코’에 합류하더니 2018년에는 팬코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했다. 팬코는 오 대표 장인인 최영주 회장이 이끄는 의류 제조 업체로, 전체 매출 절반 이상이 베트남·미얀마 등 해외에서 나온다.
두나무와도 인연이 없지 않다. 2021년 1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두나무 감사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연결고리는 ‘무신사’다. 두나무에 오 대표를 처음 소개한 것도 무신사 측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 대표는 최근까지도 비상근 경영자문으로 무신사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아왔다.
두나무는 과거부터 무신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두나무는 2021년과 2022년 무신사 중고거래 플랫폼 ‘솔드아웃(SLDT)’에 약 18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최근에도 무신사와 손잡고 총 20억원 규모 비트코인 교환권을 무신사 회원 대상으로 추첨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오 대표를 둘러싸고 무신사가, 두나무와 팬코 사이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두나무와 무신사 사이가 가까운 건 워낙 잘 알려져 있는 데다 오 대표가 맡고 있는 팬코 역시 무신사투자조합에 출자하는 등 관계가 있다”며 “오 대표는 두나무 최대주주인 송 의장과 같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오 대표가 두나무 감사 재직 이후 개인적인 인연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오 대표 ‘융합 리더십’ 빛 발할까
업비트, 금융당국 중징계 + 세무조사
오 대표는 오는 6월 말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대표이사로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두나무는 오 대표 ‘융합 리더십’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법조·세무 관련 지식과 네트워크, 여기에 동남아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까지. 그가 보유한 다방면 역량은 현재 두나무가 맞닥트린 위기 관리와 글로벌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올 하반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법인 코인 거래 지원’에서도 강점을 갖는다. 업비트는 6월 초 비영리법인인 월드비전이 보유하고 있던 이더리움 현금화를 지원했다. 향후 상장 법인과 전문 투자자 등록 법인도 코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뀔 전망이다. 세무·회계 지식과 법률 전문성, 경영 자문 역량까지 보유한 오 대표가 활약할 여지가 커지는 셈이다. 오 대표는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환경 속에서 두나무가 더욱 신뢰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안정성과 혁신을 균형 있게 추진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코인 산업 관련 경험과 역량이 전무하다는 점은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기술적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나무 주력인 코인 사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특히 NFT, 메타버스, RWA(실물자산 토큰화) 등 업비트가 적극 추진 중인 신사업은 높은 기술 이해도가 요구되는 분야다.
한 코인 업계 관계자는 “업비트에 드리운 사법 리스크와 세무조사 압박 대응에는 최적의 인사로 보인다”면서도 “단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코인 사업을 이끌어 가는 역량은 앞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코인 사업 특성상 업계 내 여타 사업자와 협력이 중요한 만큼 소통의 리더십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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