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5 13:05:32
Z플립에 그걸 탑재한다고?
삼성전자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가 돌아온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맡는 핵심 부품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에 자사 LSI사업부가 생산하는 엑시노스와 퀄컴이 만드는 ‘스냅드래곤’을 병행해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갤럭시S 시리즈에 엑시노스를 탑재하지 않았다. 엑시노스가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 비율)과 성능 측면에서 갤럭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넣기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부활을 예고했다. 하반기에 내놓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리즈인 갤럭시 Z플립7의 국내 제품에 엑시노스 2500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에 엑시노스가 안착한다면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MX사업부, 엑시노스 설계를 맡는 LSI사업부, 칩을 제조하는 파운드리사업부 모두에 호재가 될 전망이다.
국내용 갤럭시 Z플립7에 엑시노스
수율 정상화 신호탄? MX도 원한다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갤럭시 Z플립7 국내 판매용 제품에 엑시노스 2500을 탑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해외 지역에 내놓는 Z플립7에는 퀄컴 스냅드래곤 제품을 넣을 것으로 알려졌다.
엑시노스 2500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설계하고, 파운드리사업부가 생산을 담당한다. 애초 갤럭시 S25 시리즈에 적용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수율과 성능이 받쳐주지 못한 탓에 사실상 무산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시스템LSI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는 올해 들어 엑시노스 2500 성능과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MX사업부는 최종적으로 국내용 Z플립7에 엑시노스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엑시노스 2500의 성공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MX사업부는 원가 절감 측면에서 엑시노스의 성공이 절실하다. AP는 스마트폰 원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이원화 전략’으로 AP 원가를 통제했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제조사는 복수 공급사를 두고 공급망 가치사슬을 구축한다. 이는 원활한 부품 조달을 위한 목적이지만, 협상력을 높여 손익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엑시노스 탑재가 불발되면서, 삼성전자는 협상력을 잃었다. 갤럭시 S25 시리즈에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미국 퀄컴 ‘스냅드래곤8 엘리트’가 전량 탑재됐다.
퀄컴 스냅드래곤 전량 탑재는 삼성 MX사업부에 상당한 부담이다. AP는 스마트폰 핵심 부품으로 MX사업부 손익 구조를 좌우한다. 듀얼칩 전략이 무력화할 경우 퀄컴을 상대로 한 가격 협상력에서 열위에 처해 이익률 확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퀄컴은 공정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신제품 출시 때마다 전작 대비 가격을 최대 30%까지 인상한다. 스냅드래곤8 엘리트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이 갤럭시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AP 성능을 두고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렸음에도 스냅드래곤과 엑시노스를 병행했던 이유다.
삼성전자 AP 매입 비용은 2021년 6조2116억원에서 2022년 9조3138억원, 2023년 11조7320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 여파로 삼성 모바일(MX·NW)사업 부문 매출은 상승세지만, 영업이익이 추락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노출됐다. 중장기적으로 삼성 스마트폰에서 퀄컴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갤럭시 시리즈 출고가는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판매량 등 실적에도 큰 부담이다. 따라서 MX사업부 입장에선 스냅드래곤을 견제할 엑시노스의 안착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도 삼성 스마트폰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엑시노스의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다.
시스템LSI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 역시 엑시노스 성공이 간절하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올 초 삼성전자 MX사업부가 출시하는 ‘갤럭시 S25 시리즈’ 스마트폰에 자체 AP인 ‘엑시노스 2500’을 탑재하지 못하면서 1분기 동안 수천억원 규모 적자를 냈다. 칩을 생산하는 파운드리사업부 역시 분기 조 단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엑시노스가 양산에 성공한다면 두 회사 적자 규모는 꽤 줄어든다.
‘엑시노스 불신’ 넘어서야…
실패하면 중국에 따라잡힌다
다만 엑시노스 성공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땅에 떨어진 엑시노스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엑시노스 AP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상당히 높다. 원인은 2022년 4월 불거진 ‘GOS’ 사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성능을 GOS(Game Optimizing Service)라는 소프트웨어로 강제 제한한 사건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자체 AP인 ‘엑시노스’의 성능이 떨어지자 이를 숨기기 위해 고의로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기기 출력을 떨어트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스마트폰 MX사업부와 엑시노스 AP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S22의 후속 모델인 S23에 전량 스냅드래곤을 적용했다. 2024년 S24 시리즈에 엑시노스2400을 넣으며 반전을 꾀했지만, 이미지 회복엔 실패했다. 여기에 더해 2025년 S25 시리즈에 성능과 수율 부진을 이유로 엑시노스 2500 탑재가 불발되자 신뢰도는 더욱 하락했다. 실제로 Z플립7 국내 버전에만 엑시노스가 들어가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소비자 사이에선 ‘내수 역차별’이란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엑시노스가 퀄컴 스냅드래곤에 비해 성능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지나치게 엑시노스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스마트폰 마케팅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섭게 추격하는 중국 업체의 추격을 뿌리치는 것도 시급하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는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보다 먼저 첨단 3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작한 AP ‘쉬안제O1’을 공개했다. 전자 업계에 따르면 쉬안제O1은 스마트폰 성능 평가 지표인 ‘벤치마크’ 점수에서 퀄컴 스냅드래곤 8 엘리트, 미디어텍 디멘시티 9400, 애플 A18 프로 등과 비교했을 때 데이터 처리 성능과 전력 효율 면에서 일부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쉬안제O1이 당장 시장 판도를 바꿀 만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제조사 스스로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칩이다. 샤오미 측은 쉬안제O1이 여러 지표에서 애플의 A18 프로와 견줄 만한 수준에 도달하긴 했지만, 여전히 ‘추격자’에 머물러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안심할 수 없다. 엑시노스 시리즈는 현재 퀄컴 스냅드래곤은 물론, 대만 미디어텍의 디멘시티와도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점유율이 밀리는 상황 속 쉬안제O1까지 파고든다면 엑시노스로서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쉬안제O1이 애플 칩에 비해서는 격차가 크지만, 엑시노스와의 기술 격차는 적다.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지원을 받는 샤오미다. 언제든지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퀄컴과 미디어텍과도 경쟁이 버거운 형국이다. 샤오미까지 뛰어든다면 엑시노스는 버티기 힘들다. 중국 기업의 AP가 시장에 자리 잡기 전, 엑시노스가 확고한 입지를 다져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