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5 13:05:11
조현범 회장 구속…악재 겹친 한국앤컴퍼니
조현범 회장이 이끄는 한국앤컴퍼니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2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범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탓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관세 폭탄으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앤컴퍼니그룹이 오너 리스크를 잘 헤쳐나갈지 재계 시선이 쏠린다.
조현범 회장 징역 3년 선고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는 지난 5월 2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경법상 횡령·배임), 업무상 횡령·배임, 공정거래법 위반,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조현범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2023년 3월 구속 기소한 지 2년 2개월 만이다.
조 회장 혐의는 크게 보면 세 갈래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특경법상 배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회사 명의 외제차와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썼다는 횡령·배임 혐의다. 마지막으로 계열사 자금을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지인 회사에 빌려주거나, 지인 회사에 계열사 항공권 발권 업무를 맡기는 등의 특경법상 배임, 배임수재 혐의다.
재판부는 이 중 조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합리적인 채권 회수 조치 없이 지인 회사에 빌려준 특경법상 배임 혐의를 유죄라고 판단했다. 조 회장은 2020~2021년 현대자동차 협력사인 리한의 경영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회사 대표와의 친분을 앞세워 한국앤컴퍼니 계열사 자금 50억원을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또 조 회장이 회사 법인카드로 약 5억8000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회사 명의로 외제차 5대를 구입하거나 빌려 사적으로 쓰는 한편, 회삿돈으로 개인 이사 비용·가구 구입비용을 지출한 업무상 횡령·배임 행위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했다.
실형 선고에 따라 재판부는 조 회장 보석을 취소하고 재구금했다. 2023년 11월 보석 청구가 인용된 지 1년 6개월여 만에 조 회장은 다시 구치소에 갇히는 처지가 됐다.
한온시스템 조직 개편 동력 잃을까
관세 폭탄에 한국타이어 실적도 불안
조현범 회장이 다시 구속되면서 한국앤컴퍼니그룹 경영에도 적잖은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무엇보다 조 회장이 직접 나서 인수를 주도해온 한온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 회장은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한온시스템 지분 23%(구주 1억2277만주)를 주당 1만원에 매입했다.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한온시스템 지분 54.77%를 보유한 대주주로 올라섰다. 한온시스템 인수를 통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은 글로벌 자산총액 26조원을 달성해 국내 재계 30대 그룹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온시스템은 전 세계 차량용 열관리(공조) 시장에서 일본 덴소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온시스템 인수로 타이어, 배터리 등에 이어 자동차 열관리 시스템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자동차부품그룹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핵심 계열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한온시스템은 시너지를 극대화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이 같은 구상이 동력을 잃게 됐다.
어렵게 인수한 한온시스템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조 회장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왔다. 한온시스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955억원으로 전년 대비 65.5% 감소했다. 2023년엔 58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는데, 지난해 3586억원 순손실로 돌아섰다. 한온시스템이 실적 부진에 빠진 것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글로벌 전기차 판매 둔화 영향이 크다. 글로벌 열관리 솔루션 기업이라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면 실적에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올해 실적 전망도 불안해지자 조현범 회장은 대대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온시스템 조직 개편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중국, 미국, 유럽 4개 지역에 실행 중심의 ‘지역 비즈니스 그룹(Regional Business Group)’을 신설했다. 각 그룹에는 기존 글로벌 헤드쿼터(HQ)에서 맡고 있던 영업과 제품기획, 생산, 품질관리, 구매, 재무 등 비즈니스 관련 주요 기능이 분할 이관됐다. 해외 실적 부진이 지속되자 전 세계 50여개 공장 중 상당수 통폐합을 추진 중이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조 회장 구속으로 한온시스템 구조조정이 당장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극심한 실적 부진에 빠진 한온시스템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조 회장의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전문경영인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한온시스템 구조조정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핵심 계열사 한국타이어도 앞날이 불투명하기는 별반 다를 바 없다.
한국타이어는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35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향후 실적 전망도 불안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타이어의 북미 매출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판매량 중 25%를 현지에서 생산하는데 나머지 75%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한국은 25%, 인도네시아는 32% 관세를 내야 한다. 문용권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재료비 증가로 한국타이어 영업이익이 부진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여파로 당장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타이어는 관세 폭탄에 대비해 미국 테네시주 공장 연간 생산량을 내년 상반기까지 550만개에서 1200만개로 늘리기 위해 증설을 진행 중이다. 조 회장이 공장 증설에 따른 생산량 증가, 판매 등을 직접 점검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구속으로 관세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신성장동력 발굴도 주춤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최근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 ‘한국앤컴퍼니벤처스’를 출범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이 벤처캐피털을 출범한 것은 창립 84년 만에 처음이다. 자본금 150억원인 이 회사는 향후 수백억원 규모 블라인드 펀드를 결성해 하이테크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 구속으로 벤처캐피털 투자도 지연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조현범 회장 구속으로 잠잠해진 오너 일가 남매간 경영권 갈등 불씨가 살아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금으로부터 5년여 전인 2020년 6월 당시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은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형태로 지주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현 한국앤컴퍼니) 지분 23.59%를 차남 조현범 당시 사장에게 매각했다. 조현범 사장은 기존 지분 19.31%에 더해 총 42.9%를 보유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후 남매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조양래 회장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그해 7월 서울가정법원에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 심판청구를 접수했다. 부친의 주식 매각 결정이 자발적 의사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달라는 취지다.
논란이 커지자 조양래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인 경영을 맡겼고 최대주주로 점찍어뒀다”고 못 박았지만 갈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차녀 조희원 씨까지 장녀 편을 들면서 조현범 사장에게 대항했다. 그러다 2021년 4월 조현식 부회장이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판세가 조금씩 기울었고, 결국 조현범 회장 체제가 안착했다. 하지만 조 회장 법정 구속으로 남매들이 또다시 반기를 들면 경영권이 다시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 이래저래 한국앤컴퍼니그룹 안팎이 뒤숭숭한 모습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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