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5 13:03:04
사람 같은 AI에 착취당하는 진짜 사람
우리는 오늘날 상상마저 자동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가족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달라’는 명령어 한 줄이면 몇 분 만에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감성을 담은 그림이 생성된다. ‘내가 쓴 시를 밴드 콜드플레이 풍의 노래로 바꿔달라’고 하면 10분 안에 노래 한 곡이 완성된다.
인공지능(AI) 기술은 이제 단순한 오락을 넘어 검색, 광고, 교육,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어떤 질문이든 즉시 답하는 AI는 언뜻 마법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 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가 AI의 가능성에 환호하는 동안,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연구진은 전 세계를 돌며 AI 산업 관계자 수백 명을 인터뷰하고 현장을 기록했다. AI가 어떻게 노동을 소외시키고 우리의 창의성을 빼앗는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데이터 주석자, 콘텐츠 검수자, 성우, 물류 노동자, 기술자, 투자자 등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들은 오늘날의 AI를 ‘추출 기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출 기계란 인간의 지식과 감정, 창의성, 노동을 흡수해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다시 알고리즘으로 가공해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적 장치를 뜻한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AI 서비스는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클릭, 태깅, 분류 작업을 한 결과로, 어찌 보면 인간의 시간과 감정, 판단과 신체 활동이 고스란히 스며든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 이런 점에서 AI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노동을 은폐하고, 추출하며, 통제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이를 ‘디지털 식민성’이라고 부른다. 과거 제국이 식민지에서 자원과 노동을 추출해 부를 축적했듯, 오늘날 빅테크 기업들은 남반구에서 데이터와 노동을 추출해 북반구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비유다.
책은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기술 감시에 대한 시민사회의 권한, 알고리즘 설계에 대한 민주적 통제, 플랫폼 노동의 법적 보호 등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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