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양국 재계 공동번영 모색 공급망·부품기술 공조 통해 양국 수소차 산업 시너지를 제약·바이오 R&D 머리맞대 中·印 맹추격에 함께 대응 입국 간소화·인적교류 확대 스타트업 육성 힘 합칠 필요 한경협, 알래스카 LNG 사업 양국 컨소시엄 만들자 제안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7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장제국 동서대 총장(SETO포럼 이사장)이 '전환적 정의를 통한 공감의 한일관계로'를 주제로 세션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일 재계와 학계 인사들이 총 8개의 세션 발표를 진행했다. 이충우 기자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 경제인들이 얼굴을 맞대고 공동 번영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틀째 행사를 진행한 제57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선 수소부터 바이오, 관광, 스타트업, 인공지능(AI), 조선까지 폭넓은 분야를 놓고 다양한 협업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날 오전에 열린 1세션에서는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김민영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이사, 고토 가쓰야 전일본공수(ANA) 이사집행임원, 다카시마 도모히로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이사가 발표에 나섰다.
'수소산업 한일 협력'을 주제로 발표한 김동욱 부사장은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수소 기술은 초기 투자와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며 "개별 기업·국가보다는 여러 기업과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 양국은 모빌리티 수소시장 확대 등에서 협력할 여지가 많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차와 도요타는 전 세계 수소차시장을 이끌고 있는데 최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동욱 부사장은 양국이 협력해 수소충전소 확충과 공동 공급망 구축을 추진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수소 충전소는) 한일 공동의 노력을 통한 기술 표준화·공용화가 중요하다"며 "호주나 칠레 같은 수소 수출국으로부터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수소 공급망을 공동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동욱 부사장은 "수소는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표준을 만들 수 있다"며 "제품 단계에서의 협력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민영 대표는 제약·바이오 연구개발(R&D)에서의 협력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중국과 인도가 원료 의약품뿐만 아니라 R&D 분야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며 "한일 협력 방향을 R&D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빠른 의사 결정과 일본의 신약 개발 노하우를 언급하며 "장점이 합쳐져 R&D 협력이 이뤄진다면 굉장히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측 단장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한일경제협회 회장)과 일본 측 단장인 아소 유타카 일한경제협회 부회장이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충우 기자
일본 측은 입국 절차 간소화와 스타트업 투자 협력을 강조했다. 일본 항공사 ANA의 고토 이사집행임원은 "관광을 중심으로 한일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며 "입국 절차 간소화를 통해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인적 교류는 지난해 1200만명을 돌파했다. 다카시마 이사는 "일본과 한국은 경제성장과 청년 실업률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스타트업 육성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은 스타트업 육성 관점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한일미래파트너십재단은 지난해 일한미래파트너십기금과 함께 각각 서울과 도쿄에서 '한일 스타트업 협력포럼'을 개최하며 양국 스타트업을 키우고 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이날 오후 열린 2세션에서 한일 미래협력 5대 전략 과제로 △AI·조선 협력 △저출생·고령화 대응 △청정에너지 협력 △중장기적 경제연대 강화 △인적 교류 확대를 꼽았다. 김창범 부회장은 "한국은 AI 개발 역량 세계 3위, 일본은 AI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세계 5위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상호보완적 협력이 가능하다"며 "현대차와 도요타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동 개발하고, NH농협생명과 일본 요양 기업이 협력했던 사례처럼 실버 산업과 로봇기술을 중심으로 양국이 성장 동력을 공동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과 한일이 부품·모듈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조립하는 '한·미·일 연계 분산형 조선소 모델'도 제안했다.
마쓰우라 데쓰야 서울재팬클럽 이사장(한국미쓰비시상사 사장)은 "두 나라는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해 산업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좁은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동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공동 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 겸 서울·도쿄 포럼(SETO포럼) 이사장은 한일판 '에라스무스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이 제도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대학생 교환·협력 프로그램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대학 간 학점 교류, 공동학위 프로그램 등이 있다. 그는 "부산과 후쿠오카를 연결해 인구 500만명의 국제 특구도 설립해보자"며 "양국 경제단체들이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구직자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션의 한국 측 좌장을 맡은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한국과 일본이 협력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며 "지일파와 지한파를 만들기 위한 연구비 지원이나 장학 사업도 이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일본 측 좌장 사토 다이스케 교도통신 편집위원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과 한국이 가진 빠른 문화가 결합하면 큰 파괴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