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2.07 13:15:48
경기 부양 특단 조치 필요하지만…
국내외 경제기관이 한국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낮춰 잡는 중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넉 달 만에 2.1%에서 1.6%까지 내렸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1.5%, 캐피털이코노믹스는 무려 1.1%까지 제시했을 정도다.
경기 회복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지역화폐’가 정쟁 한가운데에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는 지역화폐 발행을 전면에 내세운다. 내수를 진작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로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여기에 국가 재정 투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여권에서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금 살포성 지역화폐 발행은 포퓰리즘 정책이며 물가를 자극하고 정부 재정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낸다. “이재명 대표가 주도해온 지역화폐를, 민주당에선 마치 내수 진작의 유일한 해법인듯 포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러 경제 전문가도 엇갈린 의견을 내놓는다. 다만 내수 진작 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반면 부작용이 워낙 많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지역화폐 발행의 장점은
지역 내 소상공인 ‘타깃 지원’
지역화폐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일종의 상품권이다. 할인율은 5~10% 정도. 현금 10만원을 내면 11만원짜리 지역화폐 구입이 가능한 식이다. 저렴하게 사는 만큼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찬성론자 입장이다.
일반적인 상품권과 다른 점이 또 있다. 지역화폐는 발행 주체가 각 지자체다. 돈은 해당 지자체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쓸 수 있는 가맹점도 정해져 있다. 지자체마다 사용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매출액 기준으로 사용 가능 매장을 제한한다. 예를 들어 연매출 10억원 이하 상점에서만 쓸 수 있다는 등의 조건이 붙는다. 대부분 지자체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또 프랜차이즈 직영점에서 지역화폐 사용을 할 수 없게 규정했다. 전통시장이나 동네 상점 소비를 늘리기 위함이다.
찬성론자는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역외 유출 방지 효과, 그리고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월급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낮아 쓸 돈이 없다”며 “지역화폐로 가처분소득을 올려주고 그걸 지역 상권에 쓰게 하면 민생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화폐 발행 부작용은
지자체별 부익부 빈익빈 심화
한편 지역화폐에 반대하는 이들은 부작용과 한계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먼저 재정 부담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5~10% 할인을 누릴 수 있지만 반대로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선 모두 비용이다. 화폐를 발행하고 유통·관리하는 과정에서 추가 투입되는 부대비용도 있다.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소비 진작보다 재정 리스크가 더 크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분은 학원비나 병원비 등 원래 써야 할 소비에 지역화폐를 먼저 쓸 뿐, 추가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결국 내수 진작 효과는 작고 국가 부채만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각 지자체가 편성한 예산에 따라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결정되다 보니 ‘지역 불균형’ 논란도 존재한다. 쉽게 말해 지역화폐를 많이 발행할 수 있는 부자 지자체 주민은 편익을 누리는 반면,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 주민과 지역 내 상권은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예를 들어 올해 5000억원 지역화폐 발행을 결정한 A지자체와 500억원 발행에 그친 B지자체를 단순 비교하면, 할인율 10% 기준으로 각 지역 주민이 누릴 수 있는 할인 혜택 차이는 450억원에 달한다. 역외 소비가 불가한 만큼 지역 내 자영업자 매출 증가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는 “지역화폐 도입으로 지역 내 매출 증대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 이는 인접 지자체 매출 감소를 대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자체별 양극화를 넘어 ‘지역 상권 내 양극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소비 진작 효과가 절실한 음식점 등 업종이 아닌 병원이나 학원 같은 일부 업종에 지역화폐 결제가 쏠리는 현상이 포착된다. 예를 들어 2024년 경남 김해시 지역화폐 사용처 상위 5곳 중 4곳이 학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학원에서만 전체 41% 지역화폐가 쓰였고 식당(25.1%), 식자재(10.5%), 스포츠시설(8.6%)이 뒤를 이었다.
다른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9월까지 발행된 서울사랑상품권 중 약 19.6%가 입시학원 등 사교육비로 쓰였다. 액수로 따지면 7285억원이다.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 역시 학원이나 병원 등 고액 사용처에 집중된 경향이 나타났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 진작이 목적이라면 지역화폐보다는 취약계층에 집중적으로 소비 바우처를 주는 것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지역화폐 정책, 더 다듬어 가야
무작정 발행 전 ‘정책 연구’ 필요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파악된 지역화폐 발행 부작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다듬어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병원·학원·주유소 등 지역화폐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지출 수요가 큰 업종을 사용처에서 제외하고 ‘현금깡’ 등 부정 사용을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가맹점의 연매출이나 업종별로 ‘캐시백(혜택)’에 차등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이 발의한 지역화폐법 개정안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올해에만 국내 20조원 규모 지역화폐가 발행될 것으로 추정된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무작정 발행을 주장하기 전에 철저한 연구와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현재로서는 지역화폐가 실제 지역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연간 분석이 없다시피한 상황이다.
지역화폐 효과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강동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확한 정책 효과 분석, 그리고 이를 위한 지역화폐 이용 현황 DB 구축이 먼저다. 지역화폐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현재는 판매량과 발행량 파악조차 어렵다”며 “지역화폐 유형별 판매액과 이용 금액 업종 분포, 이용자 소득분위별 소비 행태 등 세분화된 데이터 집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6호 (2025.02.12~2025.02.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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