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1.17 10:06:24
최고급 한옥에 꽂히다…조정일 코나아이 회장
1박 숙박료가 1320만원?
국내 한 한옥호텔 가격이다. 33만9000㎡(약 10만평)의 용지 위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강원도 영월 서강이 휘감아 돌고 겹겹이 쌓인 산이 둘러싼 자연의 절경 속에 위치해 있다. 총 3채로 이뤄져 있는데 한 가족 혹은 팀이 327~461㎡ 타입 독채 하나를 모두 쓰는 시스템이다. 내부는 최고급 자재와 세심한 디자인으로 완성됐으며, 고급 욕실, 사우나, 미디어룸 등 현대적인 편의시설도 구비돼 있다.
지붕 역시 예사롭지 않다. 흔히 한옥 하면 같은 색의 기와를 이어 붙인 전통 방식을 떠올리기 마련. 이곳 호텔 지붕은 붉은빛과 갈색이 미묘하게 다른 기와가 각자 개성을 뽐낸다. 국내 최초로 각 기와의 소성 온도를 조절(조금씩 다른 온도에서 구움), 다채로운 색깔의 기와를 만든 덕분이다. 낮에는 일조량에 따라 다양한 톤으로, 밤에는 조명을 비춰 또 다른 색깔 퍼레이드를 펼치며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독창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와 국제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2024 베르사유 건축상’ 호텔 부문에서 지난해 말 세계 1위에 선정됐다. VIP 방문도 화제가 됐다. 배우 이영애 가족과 장동건·고소영 부부 등 여러 유명 인사가 이곳을 찾아 언론, 소셜미디어(SNS) 등에 대대적으로 다뤄졌다.
그럼에도 ‘정말 이 값을 할까?’ ‘누가 서울에서 멀디 먼 영월까지 와서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했지?’ 등 의문은 꼬리를 문다.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 얘기다.
유럽 고성 보고 아이디어 얻다
한옥이 사업 모델이자 문화유산
이 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바로 코나아이의 조정일 회장(63)이다. 코나아이는 1998년 창업 이후 전 세계 90여개국에 진출해 IC칩 기반 신용카드 운영체제와 지역화폐 솔루션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IT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2800억원, 영업이익은 400억원대를 기록했다.
조 회장은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정보통신에서 첫 경력을 쌓았다. 이후 “기존의 불편을 IT로 해결하자”란 기치 아래 1990년대 후반 ‘서울 시민의 발’인 버스 회수권을 디지털 교통카드로 대체하는 시스템을 개발, 업계 주목을 받았다. 이는 곧 전 세계 교통카드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됐다. 이후 코나아이는 지역화폐와 IC칩 솔루션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안정된 IT 사업과는 별개로 조 회장은 디지털이 채울 수 없는 인간적인 공간과 경험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디지털은 효율성을 가져다줬지만, 정서적인 만족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는 그는 해외 출장 중 유럽의 고성(古城)을 보면서 ‘저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는 300년, 500년 된 성이나 건물이 현대적인 편의시설을 갖춘 호텔로 운영되며 그 자체가 문화와 역사가 되는데 우린 과연 그런 문화, 전통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한옥이다.
“우리나라도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한옥이라는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한옥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시스템만 잡으면 좋은 사업이자 대를 이어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될 것이라 확신했어요.”
그가 한옥 전도사가 된 이유다.
한옥에 IT를 입히다
컴퓨터 제어로 밀리미터 단위로 치목
취지와 의욕은 좋았지만 한옥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전통적인 방식에 익숙한 대목수들과의 갈등, 목재 건조와 가공에서의 기술적 한계 등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조 회장은 무엇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옥 건축 과정에 IT를 접목했다.
대표적인 예가 목재 관리 혁신이다. 전통적으로 목재는 자연 건조 방식에 의존했다. 그런데 기후와 환경 변화에 따라 건조 속도가 불규칙해지고 내부까지 균일하게 건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 회장은 시행착오 끝에 마이크로웨이브 기술을 도입했다. 이 방식은 목재 내부의 수분을 균일하게 제거할 수 있어, 목재의 뒤틀림과 변형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CNC(컴퓨터 수치 제어) 기술을 활용한 정밀 가공 방식 역시 조 회장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한옥은 목수의 손재주와 감각에 의존해 치목(나무를 자르고 맞추는 작업)을 해왔다. 이 공정을 컴퓨터 제어를 통해 밀리미터 단위로 정교하게 수행함으로써, 목재 연결 부위 오차를 최소화하고 공사 시간을 단축했다. 이는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도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로 평가받는다. 물론 초기에는 전통 대목수들이 현대적 기술에 거부감을 느껴 공사 진척이 더딜 때도 있었다. 이때 조 회장은 실험 결과와 데이터를 제시하며 적극 설득, 해외 진출도 가능할 공사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한옥 실내 환경 제어에 도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 한옥은 단열과 방음에서 취약하다는 평이 많았다. 조 회장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실내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고, 창호와 문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투숙객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손쉽게 실내 환경을 관리할 수 있어, 전통적 미학과 현대적 편리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조 회장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전통을 미래로 이어가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며 “이런 접근 방식이 한옥 건축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지난한 시간을 거친 끝에 독채 한옥 3채와 14개 객실 규모의 한옥호텔이 완공됐다. 2028년까지 18개 구역이 모두 완성될 예정이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3000억원에 달한다. 강원도 프로젝트가 완공되는 시점에 제주도와 전라도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시켜나갈 방침이다.
한옥의 세계화가 꿈
뉴욕, 파리로 확장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다. 조 회장은 “2027년 이후 뉴욕과 파리에 한옥을 짓는 것이 목표”라며 “현지 문화와 자연에 조화롭게 녹아드는 한옥 설계를 통해 한국 전통 건축의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건축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더불어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단순히 숙박 공간을 넘어, 한국 문화를 알리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조 회장은 “한옥 내에서 미술 전시와 공연을 개최하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미술 작품 거래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옥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한국의 혼을 담은 유산이에요. 이를 통해 전통문화를 현대적 방식으로 계승하고, 세계적인 문화 자산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싶습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4호 (2025.01.22~2025.02.0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