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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링’처럼 하수구에서 쓱…여성 노숙자에 필리핀 정부 긴급 지원

  • 권민선
  • 기사입력:2025.06.02 15:12:14
  • 최종수정:2025.06.02 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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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 구멍에서 한 여성이 나오고 있다. [사진 = 인스타그램 iammrthirty]
하수구 구멍에서 한 여성이 나오고 있다. [사진 = 인스타그램 iammrthirty]

필리핀 마닐라 도심의 하수구에서 기어나오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를 모은 여성 노숙자가 정부의 긴급 지원을 받게 됐다.

지난달 31일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마닐라 금융 중심지 마카티 시내 대로변 하수구에서 한 여성이 온몸에 먼지를 묻힌 채 기어 나왔다. 블라우스와 청 반바지를 입은 이 여성은 주변 행인과 운전자들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도로를 질주하듯 떠났다. 이 모습은 한 사진작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면서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사진이 퍼지자 누리꾼들은 “공포영화 ‘링’의 사다코 같다”, “‘그것(IT)’의 하수구 속 악령 페니와이즈 같다”는 반응이 쏟아졌지만, 동시에 필리핀 수도권의 심각한 노숙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마닐라 수도권 인구 약 1400만 명 중 300만 명 이상이 주거지를 잃은 채 노숙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해당 여성의 상태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사회복지개발부(DSWD)는 마닐라의 빈민 지역에서 ‘로즈(Rose)’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아냈다. 로즈는 하수구에 거주하지는 않으며, 당시 하수구에 빠뜨린 커터 칼을 찾기 위해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마카티 경찰은 “노숙자들이 하수구와 연결된 배수관을 통로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즈가 기어나온 하수구에서는 셔츠와 공구류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필리핀 당국이 여성이 나왔던 구멍을 메웠다. [사진 = 인스타그램 iammrthirty]
필리핀 당국이 여성이 나왔던 구멍을 메웠다. [사진 = 인스타그램 iammrthirty]

사회복지개발부 장관 렉스 가찰리안은 지난달 29일 로즈를 직접 만나 “그녀가 지역 내에서 작은 잡화점을 열 수 있도록 8만 페소(약 20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남편 역시 용접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노숙 중이라며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연계를 돕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일회성 지원이 노숙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필리핀 현지 언론에는 “이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문제다. 응급처방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지적이 보도됐다. 또 다른 SNS 이용자는 “도움을 주는 건 좋지만, 교육과 주거, 식량을 우선 제공한 뒤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이다. 교육도 없이 돈만 주면 결국 낭비”라고 비판했다.

하수구에서 나온 여성을 촬영한 사진작가가 SNS에 공유한 또다른 사진. 한 남성이 배수구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 인스타그램 iammrthirty]
하수구에서 나온 여성을 촬영한 사진작가가 SNS에 공유한 또다른 사진. 한 남성이 배수구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 인스타그램 iammrthirty]

사진을 촬영한 아마추어 사진작가 윌리엄 로버츠는 “하수구는 그저 피난처일 뿐이다. 햇볕을 피하거나 경찰을 피해 숨거나, 가진 물건을 감추기 위해 쓰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즈의 이야기는 우리가 외면하는 균열, 우리가 콘크리트로 덮어버린 얼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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