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내게 나쁜 날은 없었다”
2009년 참전용사 인정법 만든 주역
상·하원 모두에서 ‘만장일치’ 통과
정계 ‘레녹스 애비뉴의 사자’ 활약

“그날 이후 내게 나쁜 날은 없었다”(And I Haven’t Had a Bad Day Since)
1950년 11월 30일. 당시 나이 스무 살에 불과한 미군은 북한 대동강 인근 근우리에서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이했다. 전원 흑인 병사로 구성된 미 2보병사단 내 ‘503 포병대대’ 소속 찰스 랭글이었다.
부산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계속 진격하던 그의 부대는 예상치 못한 중공군과 마주하게 됐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중공군에 압도돼 동료들은 물론 자신도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중공군에게 포위된 부대는 밤마다 트럼펫을 불며 서툰 영어로 항복을 회유하는 중공군의 압박에 공포가 극대화했고 그는 죽어도 좋으니 고립된 상황을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있던 그가 선두에 섰고 40여명의 동료가 뒤를 따랐다.
정신없이 산을 넘어 고립된 지역을 벗어났고 정신을 잃은 그가 다시 의식을 회복한 곳은 병원이었다. 그 악몽의 순간을 기억하며 랭글은 “그날 이후 내게 나쁜 날은 없었다”고 안도하게 됐고 이 청년은 제대 후 워싱턴 정가에서 한미 관계 발전에 주춧돌 역할을 했다. 그렇게 75년이 흘렀고 이 거목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미국 하원에서 46년(23선·민주당·뉴욕 제13 선거구) 간 의원으로 활동한 찰스 랭글이 26일(현지시간) 별세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항년 94세.
고인은 한국전쟁 참전 영웅이자 지한파 정치인 이력 때문에 한국민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돼왔다.
과거 한종우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과 인터뷰에서 고인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참전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1950년 가을. 당시 북한군이 전부 항복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었고 우리도 있었기에 정말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11월 30일 근우리 전투에서 중국군이 공격했을 때 우리는 심하게 부상을 입고 많은 이들이 생포됐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니 중공군이 개미 떼처럼 몰려와 미군을 잡아가고 수색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죠. 너무 무서웠고 우리는 계속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 인생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11월 30일 이후로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나빠질 게 없다고, 살 기회가 생겼다고 느꼈고 그때부터 내게 이 보다 안 좋은 날이 없다고 책에 쓴 것이죠.”
그는 제대 후 대학과 로스쿨을 졸업하고 정치에 뛰어들어 1971년부터 2017년까지 46년간 내리 23선을 기록했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 할렘가를 지역구로 뒀기에 가능한 대기록이었다.
2016년 6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탈락한 뒤 그는 기자들에게 “(당 후보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게 46년만”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이 한국민들 뇌리에 각인된 시점은 2009년으로 꼽힌다. 미 하원에 한국전쟁 휴전일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을 발의해 입법에 성공했다.
2009년 7월 21일 하원 표결 결과는 ‘찬성 421 대 반대 0’이었다.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 법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환영하며 서명했고 2009년 7월 27일 연방정부 건물마다 조기가 게양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가 구가하는 자유와 안보, 번영은 오로지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미국 군인들 때문에 존재하며,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준 용사들은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한미 관계 증진의 큰별로 뛰었던 그는 미 정계에서 ‘레녹스 애비뉴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레녹스 애비뉴는 할렘가의 대표 거리로 정치계에서 비단 흑인 옹호를 넘어 입법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리처드 닉스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하원 결의안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1974년 8월 하원 본회의 탄핵 표결을 앞두고 닉슨 대통령은 사임을 발표했고 랭글은 이를 “헌법의 힘을 시험하는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