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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몸이 인큐베이터냐”…‘임신 여성’ 뇌사상태로 3개월 넘게 연명치료 논란

  • 권민선
  • 기사입력:2025.05.27 16:38:10
  • 최종수정:2025.05.27 16: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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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나 스미스(30)와 그녀가 임신 중인 태아. [사진 = ALIVE]
아드리아나 스미스(30)와 그녀가 임신 중인 태아. [사진 = ALIVE]

미국에서 뇌사 상태에 빠진 여성이 태아를 이유로 90일 넘게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며, 해당 주의 강경한 낙태법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현지 언론 NPR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아드리아나 스미스(30)는 지난 2월 임신 9주차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애틀랜타의 에모리대병원은 조지아주의 낙태 금지법을 근거로 그의 장기 기능을 기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조지아주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약 6주 이후부터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현재 스미스는 임신 22주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여전히 인공호흡기와 약물 투여 등 생명유지 처치를 받고 있다.

스미스의 어머니 에이프릴 뉴커크는 지역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손자는 앞을 못 보거나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임신을 중단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어야 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법적 논쟁으로도 번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 나빌라 이슬람 파크스 주 상원의원은 주 법무부 장관에 뇌사 상태 여성에게까지 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법적 해석을 요구했다.

그는 “뇌사 여성의 몸을 태아의 인큐베이터처럼 유지하라는 해석은 의료 윤리와 인간 존엄에 반하는 일”이라며 “그 어떤 법도 이런 식으로 적용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주 법무장관 측은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행위는 낙태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에모리대병원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복수 매체에 보낸 성명에서 “의료진은 관련 법과 임상 전문가 의견, 의학 문헌 등을 종합해 환자 개별 상황에 맞는 치료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가 폐기된 이후, 의료 현장에서 이처럼 법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UC 데이비스 로스쿨의 법학자 메리 지글러 교수는 “법무장관은 ‘문제없다’고 하지만, 병원 측은 법적 위험을 우려해 조심스러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에드 세츨러 주 상원의원은 “병원이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며 “이번 상황은 무고한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이라고 밝혔다.

지글러 교수는 “로 대 웨이드 폐기 이후 각 주의 인격권 법안이 본격 적용되면서 체외수정, 인구조사, 양육비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법적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는 헌법상 권리”라고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판례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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