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니쿠쇼르 단 당선
反트럼프 정서가 표심 좌우
캐나다·호주 총선과 판박이
유럽·우크라 정상 잇단 축하
EU 대러 단일대오 힘받을듯
![루마니아 대선에서 친 트럼프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된 친 EU 후보 니쿠쇼르 단(55) 부쿠레슈티 시장 [로이터 = 연합뉴스]](https://wimg.mk.co.kr/news/cms/202505/19/news-p.v1.20250519.d98e37fd30b6488bbe879a2f9b5e6183_P1.jpg)
루마니아 대통령선거에서 중도·친(親)유럽 성향 무소속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민족주의 극우 성향 후보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뒀다.
최근 캐나다·호주 총선에 이어 ‘반(反)트럼프’ 여론 영향으로 극우 성향의 후보가 또다시 패배했다.
이번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반대하는 극우 후보가 패배하면서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맞서 결속을 강화하는 토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루마니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친유럽 성향의 무소속 후보인 니쿠쇼르 단 부쿠레슈티 시장이 54.1%의 득표율로 극우 성향의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인 제오르제 시미온(45.9%)을 8.2%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일 1차 투표에서는 시미온 후보가 41% 득표율을 기록하며 단 후보(21%)의 배에 가까운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열린 대선에서는 극우 성향 무소속 후보인 컬린 제오르제스쿠가 1위를 차지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선거법 위반과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을 이유로 선거를 무효로 처리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시미온 후보는 제오르제스쿠의 지지층을 흡수해 1차 투표에서 1위에 올라섰지만 결선투표에서 기세가 꺾였다.
결선투표에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해 단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이 승리로 이어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번 결선투표 투표율은 64%로, 2000년 대선 1차 투표 이후 25년 만에 가장 높았다. 1차 투표의 투표율은 53%였다.
단 후보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루마니아 국민의 공동체가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정통 정치인이 아닌 수학 교수 출신인 그는 부동산 불법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번 대선에서는 반부패, 투명성 강화, 디지털 행정 개혁, 친유럽 노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 세계적인 반이민 정서에 힘입어 우파 세력이 급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호주에 이어 루마니아에서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후보가 막판에 역전패를 당한 것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브랜드에 대한 우파 충섬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시미온 후보는 MAGA를 본떠 ‘루마니아를 다시 위대하게’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지난달 28일 치러진 캐나다 총선에서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유당이 ‘캐나다의 트럼프’로 불리던 보수당의 피에르 폴리에브 대표를 상대로 승리하며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지난 3일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는 중도 좌파 성향의 집권 노동당을 이끄는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트럼프 따라 하기를 전략으로 내세운 보수 성향의 피터 더턴 자유당 대표가 이끄는 야권 연합(자유당·국민당)을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미국 정치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바 라흐만 유럽 담당 상무이사는 “우파 포퓰리스트인 트럼프의 MAGA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유럽 정치와 정책 방향이 MAGA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유권자들을 움직였다”며 “이는 긍정적인 트럼프 효과가 유럽 선거에 영향을 준 사례”라고 밝혔다.
루마니아 대선에서 극우 시미온 후보가 패하고 친유럽 성향의 단 후보가 승리하면서 러시아에 맞선 EU 단일대오를 더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원집정부제 국가인 루마니아에서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총리가 행정 실권을 갖지만, 외교·국방 관련 사안은 대통령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단 후보의 승리에 따라 강경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반대하는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EU에서 새로운 동맹을 얻는 데 실패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단 후보의 지지자들은 선거에서 승리한 뒤 “러시아는 잊지 마라. 루마니아는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란 구호를 외쳤다.
유럽과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루마니아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친화적인 단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단 당선자와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거듭된 조작 시도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국민이 민주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EU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역사적인 승리”라며 “루마니아가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실시된 폴란드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도 친EU 성향의 집권 여당인 시민플랫폼(PO)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30.8%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극우 성향 법과정의당(PiS)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29.1%)를 상대로 불과 2%포인트도 되지 않는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데 그쳤다. 두 후보 모두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다음달 1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중도 성향의 PO는 2023년 집권 이후 EU와 관계 개선을 추진해왔다. 반면 우파 민족주의 정당 PiS는 폴란드의 국익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보수 역사학자 출신인 나브로츠키 후보는 유럽 난민 협정을 탈퇴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적극 협력해 안보 불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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