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LPBA투어 다섯 번째 투어 도전만에 김갑선을 세트스코어 3:2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더욱이 이번투어에선 애버리지 1.109로 베스트 애버리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28일 오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미래당구클럽(성남 분당구)과 인근 카페에서 이미래를 만났다.
커피 대신 ‘자몽’을 시킨 이미래는 2시간 남짓 당구선수가 된 계기와 스타선수로서 부진한 성적에 따른 부담, 우승 순간 등에 대해 쏟아냈다.
▲아버지 영향으로 당구선수가 됐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우승 후 뭐라 하시던가.
=‘이렇게 까지 성장한지 몰랐다‘ ’정말 차원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하고 축하해주셨다. 굉장한 극찬이어서 얼떨떨했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지가 당구장에서 손님들과 함께 TV로 경기를 지켜보셨더라. 우승 확정되고 나서는 기분이 좋으셔서 (손님들에게) 지금부턴 ‘게임비 무료’라로 하셨단다. 하하.
▲2012년 고등학교 1학년때 전국대회에 데뷔, 그 해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구선수를 그만두고 싶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맞다. 내가 당구선수가 된 건 아버지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만큼 좋아서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당구를 치긴 했지만 즐기지 못했다. 사실 나는 검도선수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검도를 했고 3학년땐 대회 나가 우승도 했다. 근데 그 해 아버지가 당구아카데미에 데려가셨다. 그때부터 배운건 아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본격적으로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회 우승도 기쁜 일이지만 나에게는 ‘해야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당구를 치는 게 즐겁지 않았고 과제처럼 하나하나 해나갈 뿐이었다.
▲아버지는 왜 딸을 당구선수로 키우려고 했다고 생각하나.
=아버지가 당구를 워낙 좋아하신다. 5살 위 오빠가 있는데 오빠도 당구선수로 키우려하셨다. 오빠가 초등학생때 포켓볼을 하고 싶어했는데 아버지가 포켓볼을 반대하셨고 결국 여러 이유로 오빠는 당구선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당구선수로 키우려고 하셨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다. 졌지만 나쁘지 않은 경기를 했다. 그걸 보고 지인들도 아버지에게 ‘미래가 재능있다’ 하셨고 아버지도 그 때 내가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셨다.
▲이미래 본인의 당구란 무엇인가
=먼저 경기하는 방식부터 내 것을 찾고 있다. 고정된 틀에 입각한 시스템이 아니라 공이 자연스럽게 굴러갈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고안해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경기방식도 있겠지만 체력관리, 컨디션관리도 내 스타일에 맞추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터 11년동안 일주일 내내 당구를 쳤는데 지난해 말 부터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하루 이틀정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렇게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내 방식을 찾아나서니 요즘은 당구를 하는 것이 즐거워지고 있다.
▲이번투어도 본인 방식대로 준비했나.
=그렇다. 컨디션관리, 체력관리도 모두 내 계획대로 했다. 사실 1차투어부터 이번 투어까지 준비는 잘해왔다. 그런데 1~3차투어에서는 대회를 하루 앞두고 감기, 몸살 등을 앓았다. 그리고 4, 5차투어에서는 올해 1월 팔꿈치 수술을 했는데도 통증이 재발했다.
그래서 이번 투어 앞두고는 2~3주 정도 푹 쉬었다. 보통 대회 앞두고 잘 쉬지 못하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당구 큐를 거의 잡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휴식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 스타일을 찾아 LPBA 우승을 하니 더 감격스럽겠다.
=맞다. 그래서 이번 대회 우승은 첫 우승이라는 감격과 함께 내가 스스로 이뤄낸 첫 우승이라는 점에서 더 감동적이고 잊지 못할 듯하다. 또 LPBA우승해보니 ‘아 이게 정말 우승이구나’ ‘챔피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는데 ‘진짜 우승’ 이라는 말이 낯설다
=물론 어느 대회를 나가더라도 우승 순간 주목받고 주변 분들이 환호해주는 것은 같다. 하지만 프로대회 우승은 우승자를 정말 ‘챔피언’으로 만들어줬다. 우승 순간 많은 관객들이 환호해주고 꽃가루가 날리는 등 그 순간을 정말 감격적으로 만들어주는 PBA에 감사함을 전한다.
▲프로대회를 그만큼 남다르게 느끼는 듯 하다.
=그렇다. 어떤 스포츠 종목이든 최상위는 바로 ‘프로리그’다. 그 프로리그를 쉽지않은 과정 속에서 만들어준 PBA가 감사하다. 선수가 선수답게, 그리고 당구선수들이 프로선수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생겼다는 게 정말 좋다. 그 점에 나와 아버지 모두 동의했고 그렇기 때문에 PBA를 택했다.
▲이번 투어 결승전을 다시 되돌려보자. 결승전에서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렇다. 원래도 경기 하나하나에 긴장하는 스타일인데 프로무대 결승전이라 굉장히 긴장됐다. 지금까지 가장 긴장한 경기가 2016년 첫 세계선수권 결승(당시 이미래는 테레사 클롬펜하우어에게 패해 준우승했다)이었는데, 그때보다 더 긴장되더라.
▲5세트 2이닝, 한 큐 9득점으로 경기를 끝냈는데.
=세트제 경기는 정말 어렵다. 호흡이 짧아 매순간 긴장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5세트 9점 경기는 더 그렇다. 그래서 초반 기선제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도전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4차투어 8강전에서 강지은 선수를 만나 세트스코어 1:2로 졌는데 마지막 3세트서 처음에 뱅크샷으로 득점을 내주니 완전히 기에서 눌려버리더라(강지은과의 8강 3세트서 3:9로 패). 그래서 무조건 초반 득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특히 뱅크샷으로 초반 득점을 내자고 마음먹었다. 결국 5세트서 3번의 뱅크샷을 성공하니 자신감이 생겼고 9점을 한 번에 칠 수 있었다. 생각대로 돼서 무척 기뻤다. 하하.
▲우승이 확정되고 TV인터뷰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감격적이기도 했고 대회를 잘 못했을 때 주변에서 주는 부담감이 생각나서 그랬다. 항상 주변에서 주는 부담들이 많은데 어떤 경우 사생활까지 언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부담들이 생각났고 ‘결국 이겨냈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재방송으로 그 장면을 봤는데 관객석에서 나를 따라 울더라. 그러고보니 나도 PBA 경기를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하하.
▲무슨 장면을 보고 울었나.
=PBA 1차투어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선수와 강민구 선수의 결승을 보고서다. 당시 강민구 선수가 마지막 옆 돌리기를 놓쳐 준우승을 차지하지 않았나. 그 때 ’아 얼마나 허망할까‘ ’얼마나 가슴 아플까‘ 라는 마음에 보면서 눈물이 났다. 강민구 선수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큐는 어떤 제품을 사용하나.
=한밭 마에스트로 큐를 쓰고 있다. 가방도 한밭 제품이다. 마에스트로 큐는 직진성이 좋아서 내가 원하는대로 공을 구사할 수 있어 맘에 든다.
▲아직도 소녀 이미지가 강하다. 당구선수가 아닌 평소 이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소녀다, 동안이다’ 해주는 것은 그만큼 어리게 생겨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봐도 아직 애 같다. 젖살도 안 빠졌고. 하하. 화장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안하는데 그런 모습이 소녀같이 보이게 하는 듯 하다. 나도 여느 20대 초반 여자들처럼 영화보는거 좋아하고 맛있는 거 먹고 놀러다니는 것 좋아한다. 배우는 강동원 씨를 굉장히 좋아하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에 조금 빠졌다. 하하.
▲당구선수가 아니었다면 이미래는 무엇을 했을까.
=아마 카페에서 일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 오빠가 빵 만들고 커피를 직접 갈아서 먹고 하는 것을 보고 같이 해봤는데 정말 재밌었다. 지금도 종종 취미로 제빵도 하고있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볼까 고민 중이다. 최근에는 유튜브도 한번 해보고 싶다.
▲곧 LPBA 6차투어도 다가온다. 앞으로의 각오는.
=항상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질타보다는 격려,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남은 모든 대회 우승을 목표로 달려갈 것이고 누구를 만나도 승리할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린다. 가족, 친척, 친구외에도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신다. 미래당구클럽 실장님과 당구장 삼촌들 그리고 한밭 권오철 대표님, 벤투스 측에 감사함을 전한다. 한편으로 뒤늦게 우승해 죄송하기도 하다. 하하. [dabinnett@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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