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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선 될수도 있어서 왔죠”…121세 할머니도 소중한 한표 행사

탄핵 시위 얼룩진 한남·가회동 평화로운 분위기 속 선거 참여 121세 할머니도 주권 지켜 고깃집·레슬링장 이색 투표소로 112신고 전국서 793건 접수 각지서 중복투표 의심 사례도

  • 양세호,이수민,김송현,지혜진
  • 기사입력:2025.06.03 20:26:03
  • 최종수정:2025-06-03 20: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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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시위 얼룩진 한남·가회동
평화로운 분위기 속 선거 참여
121세 할머니도 주권 지켜
고깃집·레슬링장 이색 투표소로
112신고 전국서 793건 접수
각지서 중복투표 의심 사례도
충북 옥천의 최고령 주민인 이용금 할머니(121)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청산면다목적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충북 옥천의 최고령 주민인 이용금 할머니(121)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청산면다목적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열린 3일 전국 투표소 곳곳에선 투표에 참여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며 투표소를 찾은 이들은 새 대통령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마음을 담아 투표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11시쯤 한남동 제3투표소인 서울기술교육원 중부캠퍼스 앞은 투표하려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기 전까지 수개월간 탄핵 찬반 집회가 계속 이어지던 장소다.

주민들은 ‘국민 통합’이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인근 주민 김 모씨(55)는 과거 집회를 떠올리며 “거짓말처럼 많은 사람이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며 “나라가 반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시대를 이제 마무리하고 다음 정부는 부디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집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임 모씨(69)는 “새 대통령은 국민들 간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율해주면 좋겠다”며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인 만큼 편을 가르기보단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제1투표소인 가회동주민센터 투표소에서도 이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투표가 진행됐다. 가회동주민센터 인근엔 헌법재판소가 있어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인용되기 전까지 연일 집회와 시위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날은 투표소를 찾은 주민들과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섞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투표 ‘인증샷’을 찍는 주민들의 모습을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했다.

엄주완 씨(78)는 “헌재 앞 집회시위 소리 때문에 저녁 늦게까지 잠도 못 자고 힘들었는데, 어려웠던 지난 시간을 거쳐와서 그런지 오늘 투표하는 게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바닥난 경제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 유권자들은 가족이나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유권자의 의무를 다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제2투표소인 사직동주민센터 투표소에서는 한 손으론 요양보호사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은 채 투표소를 찾는 어르신들이 종종 목격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투표소에 도착한 어르신도 있었다.

충북 옥천에선 지역 최고령자인 이용금 할머니(121)가 청산면다목적회관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이날 오전 투표소를 찾은 이씨는 75세인 딸의 부축을 받아가며 투표소를 찾았다. 그는 “생전 마지막 대통령선거가 될 수도 있어 투표에 참여했다”며 “훌륭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댐 건설로 육로가 끊겨 ‘육지 속 섬’에 살고 있는 강원 화천군 파로호 인근 동촌1리 4반 주민 3명도 행정기관이 지원한 배와 버스를 타고 2시간을 이동해 선거에 참가했다. 모두 80대 고령자인 주민들은 최북단 투표소인 풍산초등학교를 찾아 주권을 행사했다.

이날 하루만 역할을 바꾼 이색 투표소도 눈길을 끌었다. 지역 선관위가 주민 접근성과 시설 규모 등을 고려해 민간시설을 활용해 투표소를 마련한 것이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는 레슬링 체육관에 투표소가 마련됐다. 투표소를 찾은 사람들은 벽에 걸린 선수들의 사진을 보며 평소 겨루기가 진행되는 연습장에서 기표를 진행했다. 경기 광명시 소하2동 제4투표소가 마련된 한 식당에서도 투표가 이뤄졌다. 이 투표소 바로 옆 분리된 공간에서는 손님들이 고기를 굽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새 시대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 열기에도 불구하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선거 관리 부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사전투표에서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선관위가 고객를 숙였지만 본투표에서도 곳곳에서 사고가 일어나 공정 투표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기준 대선 관련 112 신고는 총 793건 접수됐다. 투표 방해·소란 223건, 폭행 5건, 교통 불편 13건, 기타(오인 등) 552건 등으로 집계됐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당중초등학교 투표소에서는 한 70대 여성 유권자가 인적사항을 확인하던 중 이미 투표가 됐다는 안내를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같은 선거구 내에서 동명이인이 확인돼 동명인의 투표 사실 조회 등 범죄 여부를 확인해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시내에선 관악구, 서초구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사실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경기 평택시 동삭동과 안양시 동안구 달안동,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등에서도 유권자가 선거인명부 서명란에 자기 이름으로 서명이 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신고한 사례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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