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부산 동의과학대학교 의료피부미용과에 입학한 손혜경 씨(49)는 3년 전까지 전국체전 경남 대표 사격선수로 활동해왔다. 부산·도하 아시안게임 2관왕을 포함해 아시안게임에서 딴 메달만 10개. 사격선수로 쌓은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대학 신입생으로 다시 교문을 두드린 건 인생 2막을 위한 결정이었다. 손씨는 27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입학해보니 제 또래인 40대와 50대 언니, 동생 열다섯 명 정도가 같이 수업을 듣고 있어 힘이 된다"며 "경력을 살려 운동선수를 위한 마사지 등도 열심히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사회에 진출한 뒤 다시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늦깎이 신입생'이 늘고 있다. 고용 불안과 취업난 속에 자격증과 실무 기술을 갖춘 직업 역량이 중요해지면서 전문대가 주목받는 것이다. 이날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문대 재학생 중 25세 이상 성인학습자인 만학도는 2018년 4만6409명에서 지난해 8만8739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대로 재입학한 '유턴 입학생'은 지난해 1922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1571명, 2022년 1770명에 이어 증가세가 계속되는 것이다.
강광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입학지원실장은 "산업구조 변화와 불확실한 고용 환경 속에서 재교육 수요가 늘고 있다"며 "비수도권 한 전문대는 신입생 70% 이상이 만학도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직업 전환, 창업, 자격증 취득, 이직 준비, 은퇴 후 제2의 인생 설계 등 현실적인 이유로 전문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포항대 수소·전기에너지계열 재학생 이상욱 씨(25)는 4년제 대학 실내건축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올해 다시 전문대로 '유턴 입학'한 신입생이다. 졸업 후 실내 디자인 관련 회사에 취업해 창업을 준비했지만 현실의 벽을 크게 느꼈다. 이씨는 "수소·전기 에너지 분야 지역 우량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입학했다"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 지식·기술을 익혀 수소·전기 에너지 분야 전문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25세 이상 성인학습자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는 사회복지학과, 스마트자동차과 등이 꼽힌다. 복지 계열 학과는 만학도 등록 비율이 40%를 넘는 곳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전문대학은 성인학습자를 위한 특별입학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1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윤 모씨 부부는 올해 대전과학기술대 산업체 위탁교육과정 사회복지과에 나란히 입학했다. 아내 유 모씨는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산업체 위탁교육과정은 산업체 재직자들이 경력을 이어가며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로, 정규 전문대 졸업과 동일하게 전문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윤 씨 부부는 "졸업 후에는 요양·돌봄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용업을 운영 중인 최덕임 씨(56)는 전문적 미용 지식을 쌓고자 올해 신구대 뷰티디자인과 헤어디자인전공에, 탈북민 김은희 씨(42)는 북한음식점 창업을 목표로 올해 영남외국어대 약선치유조리과에 진학했다. 이 밖에 부부·모녀 동반 입학이나 고령층 등 '실버 신입생' 입학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효인 대전과기대 총장은 "올해 89세 신입생이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입학하는 등 다양한 연령층과 경력의 학습자들이 진학하고 있다"며 "성인학습자의 다양성을 반영해 맞춤형 제도적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대로 만학도들이 몰리는 이유는 2~3년 내 학위 취득이 가능한 비교적 짧은 교육 기간과 실무 중심 교육이 꼽힌다. 온라인 강의, 야간반·주말반 등 유연한 학사제도 또한 만학도들에게는 큰 장점이다. 등록금 역시 4년제 대학에 비해 낮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문대 1년 평균 등록금은 공립 237만원, 사립 651만원으로 4년제 대학의 56~81%다.
강 실장은 "간판보다는 실용 역량과 자격이 중요해지는 추세"라며 "전문대는 성인학습자 특성에 맞춰 대학조직·체제를 개편하고 지역사회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며 "성인학습자의 평생 직업 교육 허브로 전문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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