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매일경제가 대한적십자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거석 씨(78)는 자신감과 확신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자신의 신념을 또렷하게 밝혔다. 인터뷰 내내 그는 투자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인생을 살아오며 쌓아온 신념을 바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젊은 시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김씨는 이제 투자 수익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기부자다. 지난해 12월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283호 회원으로 가입한 김씨는 대한적십자사에 10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초고액기부클럽'의 1호 개인 회원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8일에는 그의 기부금으로 서울적십자병원 '누구나진료센터'가 문을 열었다. 말 그대로 누구나 진료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부금 전액이 취약계층 의료 지원에 쓰인다.
김씨의 성장 과정은 고난으로 점철됐다. 6·25전쟁 중 네 살의 나이에 제주도로 보내져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직도 그의 얼굴에는 어렸을 적 빨치산의 공격을 받고 생긴 상처가 남아 있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각종 일을 전전해야 했다.
열아홉 살 무렵 남산 팔각정에서 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밤 풍경을 보며 '꼭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는 부동산 투자를 거쳐 주식 투자에 눈을 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집을 날릴 만큼 큰 실패도 있었다. 김씨는 재기를 위해 호텔 경비원으로 5년 동안 일하며 추운 겨울 얼어붙은 손으로 종잣돈을 모았다. 그리고 성공한 개인투자자 반열에 올라섰다.
김씨가 투자에 성공했을 때만큼이나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기부를 할 때다. 201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고액기부를 시작한 그는 "큰돈을 썼는데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또 "예전부터 대한적십자사에 매월 5만원씩 정기적으로 기부해왔는데, 기부하니 오히려 더 일도 잘 풀렸다"며 "기부를 위해 적십자사를 찾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는 돈을 버는 방법보다 돈을 쓰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어떤 종목에 투자하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으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또 그런 마음가짐이 결과를 더 좋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어 "큰돈을 번 사람들은 많지만, 진짜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후원과 기부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개인 기부자'가 되고 싶다는 김씨의 꿈은 현재 진행 중이다. 김씨는 "워런 버핏과 피터 린치처럼 기부를 통해 나의 성공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고액기부자들의 기사를 스크랩하며 자극받고 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경제 공부에 눈을 뜨고, 함께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의 기부철학과 투자철학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바로 '긍정적 마음가짐'이라는 부분이다. 김씨는 "사람은 장기 의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팅해야 한다. 힘들어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친김에 김씨의 투자 공부법이 궁금해졌다. 이에 대해 김씨는 "40년 넘게 경제신문을 정독하며 투자 감각을 키웠다"고 했다. 여기에 피터 린치와 워런 버핏의 책도 교과서로 삼았다. 김씨는 "남보다 한발 앞서가야 돈이 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신문은 고액 기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개인과 기업·단체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적십자사로 문의하면 됩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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