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에 오른 추미애 더민주 의원은 스스로를 '추다르크' 또는 '세탁소 집 둘째 딸'로 표현한다.
추 신임 당대표는 1958년 대구의 한 세탁소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추 신임 당대표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떠나 외가에서 자랐다'며 어린 시절을 회고하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가까이에서 겪었던 탓에 추 신임 당대표는 약자에게 힘이 되기 위해 법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사법고시를 통과해 판사가 된 추 신임 당대표는 판사 시절인 1986년 1000여명의 학생이 구속된 '건국대 점거농성사건' 당시 학생들이 읽어던 100여권의 책을 압수수색하겠다는 검찰의 영장을 기각했다. 추 신임 당대표는 '판사는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판사의 길을 걷던 추 신임 당대표가 정계에 입문한 계기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이다. 1995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추 신임 당대표는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추 신임 당대표에 대해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고 평가한 김 전 대통령은 추 신임 당대표에 대해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 역시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대선 당시 추 신임 당대표는 김 전 대통령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추 신임 당대표는 당내에서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의 활약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TK(대구·경북) 지역의 강력한 반호남 정서 탓에 주위의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추 신임 당대표는 꿋꿋한 유세활동으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과 함께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앞세워 추 신임 당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레이스에서 '호남의 며느리'라는 점을 강조하며 호남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1996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 광진을에서 승리하며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추 신임 당대표는 지난 4·13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여성 정치인 중 최초로 '지역구 5선(15·16·18·19·20대 총선) 의원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는 듯 했던 정치인의 길은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추 신임 당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누구보다도 돈독하다고 이야기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추 신임 당대표는 당내 전당대회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 전 대통령 역시 추 신임 당대표를 정치적 동지로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탄핵 정국' 당시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당시 민주당에 속했던 추 신임 당대표는 역풍을 맞았다. 속죄의 의미로 '삼보일배'를 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번 전당대회 레이스에서도 탄핵 정국 당시 행적이 추 신임 당대표 최대 약점으로 꼽혀왔다. 추 신임 당대표는 "줄곧 탄핵 불가론을 견지해왔다.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추 신임 당대표가 탄핵 당시 논란을 넘어서 친노··친문의 지지를 얻어 이번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것은 지난 해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당대표를 맡았을 당시 최고위원을 맡아 문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기는 했지만 '더민주 정체성과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은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에 대해 날을 세우면서 '야당 정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도 승리 요인으로 풀이된다.
■ 추미애는 누구
▲1958년 대구 달성 출생 ▲한양대 법학과 ▲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인천·전주지법 광주고법 판사 ▲15·16·18·19·20대 국회의원 ▲2002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2012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2015 더민주 최고위원 ▲2016 더민주 당대표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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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신임 당대표는 1958년 대구의 한 세탁소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추 신임 당대표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떠나 외가에서 자랐다'며 어린 시절을 회고하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가까이에서 겪었던 탓에 추 신임 당대표는 약자에게 힘이 되기 위해 법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사법고시를 통과해 판사가 된 추 신임 당대표는 판사 시절인 1986년 1000여명의 학생이 구속된 '건국대 점거농성사건' 당시 학생들이 읽어던 100여권의 책을 압수수색하겠다는 검찰의 영장을 기각했다. 추 신임 당대표는 '판사는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판사의 길을 걷던 추 신임 당대표가 정계에 입문한 계기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이다. 1995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추 신임 당대표는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추 신임 당대표에 대해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고 평가한 김 전 대통령은 추 신임 당대표에 대해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 역시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대선 당시 추 신임 당대표는 김 전 대통령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추 신임 당대표는 당내에서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의 활약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TK(대구·경북) 지역의 강력한 반호남 정서 탓에 주위의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추 신임 당대표는 꿋꿋한 유세활동으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과 함께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앞세워 추 신임 당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레이스에서 '호남의 며느리'라는 점을 강조하며 호남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1996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 광진을에서 승리하며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추 신임 당대표는 지난 4·13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여성 정치인 중 최초로 '지역구 5선(15·16·18·19·20대 총선) 의원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는 듯 했던 정치인의 길은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추 신임 당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누구보다도 돈독하다고 이야기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추 신임 당대표는 당내 전당대회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 전 대통령 역시 추 신임 당대표를 정치적 동지로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탄핵 정국' 당시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당시 민주당에 속했던 추 신임 당대표는 역풍을 맞았다. 속죄의 의미로 '삼보일배'를 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번 전당대회 레이스에서도 탄핵 정국 당시 행적이 추 신임 당대표 최대 약점으로 꼽혀왔다. 추 신임 당대표는 "줄곧 탄핵 불가론을 견지해왔다.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추 신임 당대표가 탄핵 당시 논란을 넘어서 친노··친문의 지지를 얻어 이번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것은 지난 해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당대표를 맡았을 당시 최고위원을 맡아 문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기는 했지만 '더민주 정체성과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은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에 대해 날을 세우면서 '야당 정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도 승리 요인으로 풀이된다.
■ 추미애는 누구
▲1958년 대구 달성 출생 ▲한양대 법학과 ▲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인천·전주지법 광주고법 판사 ▲15·16·18·19·20대 국회의원 ▲2002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2012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2015 더민주 최고위원 ▲2016 더민주 당대표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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