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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절망했는데 종양 1cm로 줄었어요”…말기 환자들의 희망 ‘렉라자’

이대목동병원 60대 환자 반년 복용 후 폐절제수술 9개월만에 완전관해 판정 ‘표적치료 후 수술’ 길 열려 일상생활하면서 폐암 극복 말기 환자들에게도 ‘희망’

  • 김지희
  • 기사입력:2025.05.28 05:54:30
  • 최종수정:2025-05-28 10: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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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목동병원 60대 환자
반년 복용 후 폐절제수술
9개월만에 완전관해 판정

‘표적치료 후 수술’ 길 열려
일상생활하면서 폐암 극복
말기 환자들에게도 ‘희망’
최명근(왼쪽)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와 신수민 이대목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렉라자 복용 후 폐절제 수술로 완전관해를 이끌어낸 김 씨의 치료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유한양행]
최명근(왼쪽)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와 신수민 이대목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렉라자 복용 후 폐절제 수술로 완전관해를 이끌어낸 김 씨의 치료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유한양행]

“폐암 4기 판정을 받으면 치료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복 가능성도 낮은데 항암 치료로 고통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먹는 항암제’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7월 이대목동병원을 찾은 김태영 씨(남·61)는 전혀 생각지 못한 ‘암 선고’를 받았다. 기침이 두 달 넘게 계속됐고, 감기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검사 결과 왼쪽 폐에서 지름 7.5㎝의 종양이 발견됐다. 김씨의 진료를 맡은 최명근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의 판단은 폐암 3기 말~4기였다.

김씨의 병은 조직 검사와 유전자 검사 등을 거쳐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으로 확인됐다. 7㎝가 넘는 메인 종양 주변에는 악성흉수가 의심되는 정황도 있었고, 암이 림프절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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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 교수는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떠올렸다. 당시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시작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최 교수는 “최신 연구들에 따르면 EGFR 변이가 있는 환자의 1차 치료제로서 렉라자 같은 3세대 표적 항암제가 1, 2세대 약물보다 훨씬 좋다”며 “3세대 항암제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레이저티닙은 기존 임상에서 EGFR 엑손 19 결손 또는 엑손 21 치환 변이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터라 이 약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몇 달 동안 김씨를 괴롭히던 기침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하루 세 알씩 렉라자를 복용한 지 두 달여 만에 메인 종양의 크기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약을 복용한 지 4개월째에는 종양 크기가 1㎝까지 줄었다. 최 교수는 “첫 CT에서부터 예후가 좋았고 메인 종양 외에 림프절 전이까지 빠르게 줄면서 국소 치료나 공고요법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수민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와의 협진이 시작됐다. 다만 렉라자와 같은 EGFR 티로신키나아제억제제(TKI) 치료 후 수술을 시행하는 사례는 매우 드문 만큼, 수술 결정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졌다.

최명근(왼쪽)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와 신수민 이대목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사진 = 유한양행]
최명근(왼쪽)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와 신수민 이대목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사진 = 유한양행]

신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단 하나라도 남아 있는 경우 다시 커질 수 있는 만큼 광범위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신 전이가 없는지 여러 차례 확인이 필요했다”면서 “또 표적 치료를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수술 후 원활하게 회복이 가능한지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술을 결정했다”고 했다.

김씨는 올해 1월 좌측 폐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지난 4월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다. 렉라자로 치료를 받고 병리학적 완전관해에 이른 두 번째 사례다. 다학제적 접근을 통한 ‘표적 치료 후 수술’이라는 치료 전략의 임상적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도 평가된다. 기존 치료 전략으로는 긍정적인 예후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말기 폐암 환자의 장기 생존은 물론 완치 가능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명근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사진 = 유한양행]
최명근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사진 = 유한양행]

최 교수는 표적 치료 후 수술 전략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 교수는 “EGFR 변이 환자들은 수술 전이든 수술 후든 표적 항암제를 치료 과정에 무조건 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3세대 약물에 대한 관련 연구나 데이터가 충분하게 쌓이면 표준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신 교수는 “일단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 종양을 항암제로 제거하고 상대적으로 큰 종양은 수술이나 국소 치료, 방사선 치료 등으로 제거하면 예후가 좋다는 것은 일반적인 데이터”라며 “다만 수술로 인한 합병증 우려와 회복 문제에 따라 여러 분야 의사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판단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암을 이겨낸 뒤 김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씨는 “렉라자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히는 손발 저림 증상이나 피부 염증이 줄어 피부가 깨끗해졌다는 점 정도”라며 웃었다.

그는 “강의와 컨설팅 등 기존에 해왔던 일도 수술 후 한 달여의 회복 기간 외에는 차질 없이 이어올 수 있었다. 최근에는 하루에 8시간 강의를 하기도 했다”며 “좋은 치료법이 많으니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분들이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 용어 설명
▶▶ 완전관해 : 질병의 증상이나 병변이 사라진 상태. 주로 암 환자에게서 임상적으로 병변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암 세포가 보이지 않을 때 쓴다. 완전관해는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매우 긍정적인 지표이지만, 약물 등 치료를 중단하더라도 재발 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완치’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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