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문 닫고 일감 끊겨
우수한 한인 인재들 ‘고통’
“美서 연구하며 韓 가교 원해
보스턴을 K인재 양성소로
전략인재 영입 기회 삼자”
![지난 3월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연구 지원 축소 정책에 항의하는 과학자들이 시위하는 모습. [AP = 연합뉴스]](https://wimg.mk.co.kr/news/cms/202505/19/news-p.v1.20250515.fdd74518ad4d478c8255eb87e5da3894_P1.jpg)
#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 근무 중인 한인 연구원 A씨는 최근 지도교수에게 오는 8월 연구실이 폐쇄된다고 통보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국립보건원(NIH)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지도교수가 지원한 과제들이 대거 탈락해서다.
A씨는 “한평생 톱티어 연구를 해오던 분이라 (탈락에) 충격이 컸던 듯하다”며 “미국이 기초과학 R&D를 크게 줄이고 있다는 게 실감났다”고 말했다. A씨는 당장 8월부터 일할 새 직장을 급히 찾고 있다. 학계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연구에서 손을 놓을 결심까지 했다. 학술지 편집인 등 여러 선택지를 고려 중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현지에서 만난 한인 연구자들은 미국 과학계가 얼어붙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사후연구원(포닥)들이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였다. 포닥이란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계약직 연구원들을 말한다. 국내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에서는 예산 삭감으로 연구개발이 위축된 지금이 우수 인재들을 모셔올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도 R&D 예산을 크게 삭감했다. 내년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NIH 예산은 올해 대비 각각 55%, 40%로 반 토막 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MIT 박사후연구원은 “R&D 예산 삭감을 한국에서 겪고 미국에서는 겪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재현되고 있다”며 “오히려 지금은 한국이 조금 더 안정된 상황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용형석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후연구원도 “미국 정부의 R&D 예산 칼바람으로 최근 지도교수가 포닥들에 각자 ‘살아남자(Survive)’고 얘기했다”며 “당장 내후년을 위한 지원을 최선을 다해 찾자는 의미로 학계 분위기가 그만큼 불안정하고 좋지 않다”고 전했다.
상황은 안 좋지만 한인 연구자들은 아직 미국, 특히 보스턴을 떠나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최상의 바이오 연구 환경 때문이다. 언제든 협업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도처에 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업체인 미국 모더나의 창업자 로버트 랭어 MIT 교수 같은 이들이 학교 캠퍼스를 걸어다닌다. 그의 오피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각종 대학과 연구소, 병원, 빅파마들도 모여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재들이 칸막이를 넘나들며 일하고 경쟁한다. 김나영 미국 하버드 의대 펠로는 하버드 비스연구소 포닥이자 MIT 연구원이다.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다.
이들 기관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연구 공간과 장비도 있다. 김 펠로는 “중복된 투자 없이 효율을 추구하려는 것”이라며 “대학이나 연구소, 병원 외에 기업들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한인 연구자들은 각자 주 전공이 달랐지만 모두 바이오 분야 연구를 수행 중이었다.
용 박사후연구원은 전자알약을 체내에서 발생되는 전기로 구동시키는 연구를, 최우진 MIT 박사후연구원은 장내 미생물 숫자를 화학공학으로 유전자 변형 없이 증대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 펠로는 자연에 없는 RNA 전사과정을 만드는 연구를, 이창림 하버드대 의대 연구원은 남자와 여자의 눈이 어떻게 다른지를 탐구 중이다.
이들은 미국 과학계가 불안정할수록 한인 박사후연구원들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보스턴을 한국을 위한 바이오 인재양성소로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과학 분야 한인 과학자들의 모임인 ‘뉴잉글랜드 생명과학협회(NEBS)’의 부회장을 역임 중인 김나영 펠로는 “약 90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가량이 한국에 돌아가길 희망했다”며 “한국에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한국과의 연구협력을 이어가는 연구자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한인 연구자들에 대한 전략적 인재영입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윤호 미국 다나파버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박사 학위 취득 약 10년이 지난 한인 연구자들을 집중 영입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에서 경쟁력을 확실히 입증한 이들에 대한 유인책을 늘리면 한국에도 효율적인 인재영입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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