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이젠 AI도 두렵지 않다...네·오·블·루·칼·라 [스페셜리포트]

  • 박수호,나건웅
  • 기사입력:2025.05.23 15:10:27
  • 최종수정:2025.05.23 15:10:27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해도 요즘 취업이 너무 어렵지 않나요. 마이스터고에 입학해 기업 특채로 일찍 사회에 진출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내신 따기도 상대적으로 더 쉬워서 나중에 대학 갈 기회를 잡는 것도 한층 수월하죠.” 서울 한 마이스터고 자동차학과에 재학 중인 3학년 김 모 군(18)의 당찬 포부다.

과거 푸른 작업복으로 상징되던 블루칼라가 ‘네오블루칼라(Neo-Blue Collar)’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네오블루칼라는 첨단 기술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고소득 숙련 육체 노동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블루칼라는 과거엔 공부를 포기하거나 직장 생활 적응을 못한 이가 내몰리는 ‘차선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요즘은 김 군처럼 아예 일찌감치 기술인이나 육체 노동자 길을 선택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급격한 디지털 전환이 오히려 블루칼라 위상을 드높이는 모습이다. AI가 인간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대체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화이트칼라보다 생산직·기술직이 유망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AI 시대 속에서 역설적으로 ‘사람의 손’과 ‘현장의 기술’이 다시금 주목받는 셈이다.

실제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올해 3월 1990년대 후반 이후(Z세대) 구직자 16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봉 7000만원 교대근무 블루칼라’와 ‘연봉 3000만원 야근 없는 화이트칼라’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8%가 블루칼라를 선택했다.

Z세대 새로운 워너비 직업군으로 떠오르고 있는 네오블루칼라, 그들은 누구일까.

2030 젊은 세대 사이에서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요즘이다. 사진은 한국폴리텍대 인천캠퍼스 스마트전기자동차과에서 고전압 배터리 구조 및 충전 방법에 대한 실습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폴리텍대 제공)
2030 젊은 세대 사이에서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요즘이다. 사진은 한국폴리텍대 인천캠퍼스 스마트전기자동차과에서 고전압 배터리 구조 및 충전 방법에 대한 실습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폴리텍대 제공)

Z세대 급부상한 ‘네오블루칼라’

요즘은 직업고 탈락하면 인문계 진학

네오블루칼라는 말 그대로 요즘 각광받는 ‘새로운 블루칼라’ 트렌드를 말한다. 인식부터 달라졌다. 기존 블루칼라는 3D(Dirty·Dangerous·Difficult) 업종, 단순 육체 노동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요즘엔 전문 지식과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육체적 업무 활동을 주로 하는 현장 기술자로 인식한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고착된 ‘화이트칼라 우위’라는 직업 서열 의식도 점차 옅어지는 중이다. 요즘 사회에서 ‘사농공상’ 인식은 옛말이 됐다. 학벌 가치보다는 개인 역량과 전문성이 중요해지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오히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술 장인’을 향한 사회적 존경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요즘에는 특성화고 또는 직업계고 입학 신청이 쏟아지면서, 오히려 탈락자가 인문계고로 진학하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다. 광주광역시교육청에 따르면, 2025학년도 직업계고 신입생 정원(1815명)을 훌쩍 웃도는 총 2271명이 입학에 지원해 성적·면접 순위가 낮은 456명이 탈락했다. 탈락자 상당수는 일반고로 진학했다. 대구에서도 모집 정원 3618명에 지원자 4840명이 몰리며 탈락자가 일반고로 진학하는 역현상이 벌어졌다.

취업률 70%대를 유지 중인 ‘마이스터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2010년 도입된 ‘산업 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춘 직업계 고등학교다. 각 분야 전문성을 쌓고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진학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5학년도 서울 지역 마이스터고에 모집 정원 558명 중 824명이 지원해 이 중 565명이 최종 합격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충원율 100%를 넘어섰다.

현직 젊은 층 블루칼라 비중도 늘어나는 중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지게차 운전기능사 2030 취득자가 전체 절반에 가까운 48.2%를 기록했다. 도배기능사(38.7%)와 타일기능사(35.2%) 역시 3명 중 1명 이상 꼴로 20·30대다.

“예전에는 공부 못하면 공고 간다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기술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 같아요. 부모님도 처음엔 걱정하셨지만, 지금은 제 선택을 지지해주십니다.” 반도체 장비 유지보수 기술을 배우고 있는 대학생 박 모 씨(22)의 말이다.

사진설명

AI 대체 가능성 적고 소득 높아

“일한 만큼 번다”…워라밸 만족

의외로 ‘안정성이 높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 그렇다. 고소득·고학력 화이트칼라 직종일수록 AI 일자리 공습에 취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요즘이다. 극심한 학력 경쟁과 스펙 경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결국 AI에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반면, 블루칼라가 수행하는 육체 노동 일자리는 AI에 의해 대체되기 어렵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섬세한 작업,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까지 대체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제 기술은 AI가 아니라 제가 연마하는 거니까요.”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다 민간 회사 항공 정비 분야로 옮겨 30년째 일하고 있는 박재현 씨(52)의 자신감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점도 화이트칼라 위기의식을 확산했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동안 대학 졸업과 대기업 취직이 성공 방정식으로 통용돼왔다. 화이트칼라 공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요즘 AI 등 기술 발전으로 그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공급이 많고 수요는 줄다 보니 화이트칼라 임금은 오르기가 어렵다. 블루칼라는 다르다. 현장은 줄어들지 않고 AI 대체 가능성도 적다. 그간 부정적 인식 덕분(?)에 공급도 부족한 실정이다. 월 수천만원씩 벌어들이는 고소득 네오블루칼라 사례가 최근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배경이 여기 있다.

중소·중견기업 역시 고숙련 기술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블루칼라 임금 수준이 과거보다 크게 향상됐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밀기계 등 첨단 분야 숙련공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특수용접이나 배관 등 건설 현장 숙련 기술자는 일당 50만원 이상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포착된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노동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도제식 견습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기계공과 목수 평균 시급은 각각 23.32달러(약 3만3000원)와 24.71달러(약 3만5000원)에 달했다. 대졸 초임 화이트칼라의 평균 시급(20달러·2만8000원)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국 발전소 엔지니어나 엘리베이터 설치·수리공의 평균 연봉(약 1억3400만원)은 미국 직장인 평균 2배에 달한다.

블루칼라 일자리 접근성이 높아진 점도 호재다. 포털 사이트나 SNS를 통해 일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생활 서비스 플랫폼 ‘숨고’를 비롯해 ‘크몽’ ‘탈잉’ ‘청소연구소’ 등 일자리 매칭 플랫폼에 입점해 돈을 버는 이도 많다. 예를 들어 숨고는 입찰 방식을 통해 이용자가 용역 제공자(고수)를 선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용자는 여러 고수로부터 견적을 받아보고 그중 맘에 드는 서비스와 비용을 제안한 이를 택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기준 에어컨 청소(39%), 청소(28%), 설치 수리(24.5%), 상업 인테리어(19.1%) 같은 분야에 입점한 고수가 2년 전 대비 특히 빠르게 늘어나며 활성화된 모습이다.

Z세대 달라진 사고방식도 블루칼라 유입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중시하는 신세대에게 일한 만큼 더 받을 수 있는 공정한 보상 체계가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복잡한 사무 업무 대신 단순 반복 작업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도 Z세대가 블루칼라를 선호하게 된 요소 중 하나다. 매경이코노미가 HR테크 플랫폼 인크루트에 의뢰해 전국 대학생·취업 준비생 4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블루칼라를 선호하는 이유로 “일이 단순해서”라는 답변(57.9%, 중복 응답 기준)이 가장 많았다. ‘노동 대비 수입이 괜찮아서(47.6%)’라는 답과 ‘승진 스트레스 등에 지나치게 시달릴 필요가 없어서(30.9%)’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블루칼라 일자리는 업무량과 책임성이 명확해 업무의 시작과 종료가 분명하다. 업무량과 보수가 비례하며, 수평적 동료 관계라는 점에서 조직 내 스트레스도 적다”며 “이는 공정과 워라밸을 중시하고 개인주의 경향이 강한 Z세대 특성과 잘 맞는다”고 분석했다.

네오블루칼라 자리 잡으려면

실제 현장에는 ‘외국인’만 바글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특히 건설 현장은 고된 업무환경과 부정적인 인식 등으로 그간 오랜 세월에 걸쳐 젊은 층이 기피하면서 당장 일손이 부족한 실정이다. “기존 숙련공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고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가 채워가는 실정”이라는 게 현장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 현장 노동자는 “최소 10년 정도는 일해야 숙련공으로 인정받는데 현재 공백이 워낙 크다. 임금이 적고 일을 열심히 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빠르게 메웠지만 소통 한계로 하자가 발생하거나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적잖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실력보다는 지연 등 인적 네트워크가 취직에 영향을 주는 ‘낙하산’ 문제, 청소·도배 등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단순 노동으로 쏠림 현상, 생산직과 사무직 사이 새롭게 나타난 갈등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여럿이다.

정부 차원 블루칼라 육성 노력도 상당하다. 고용노동부 산하 기능대학교인 ‘한국폴리텍대’가 대표적이다. 산업현장 실무 능력을 갖춘 중간기술자를 양성해 졸업자에게 산업 학사 학위를 주는 2년제 학위 과정을 운영한다. 제조·기술직을 비롯해 최근에는 IT 전문가 과정에도 사람이 몰린다. 한국폴리텍대를 통해 한 해 1만2000명이 넘는 기술직 인재가 양성된다.

네오블루 양성에 소매를 걷어붙인 민간 기업도 있다. 1977년 설립한 토종 전동공구 업체 ‘계양전기’는 임수미 페데스톨 대표와 손잡고 ‘네오블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숙련공이 근로 현장에서 존중받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다. ‘네오블루 앰버서더’를 선정해 각종 공구를 지원하고, 소감이 담긴 인터뷰 영상을 만들어 대중에게 블루칼라 인식을 높이는 방식이다. 다양한 분야의 블루칼라 청년을 직접 만나 조언도 해주고 기술도 공유한다. 임수미 대표는 “오랜 시간 젊은 층에서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이 워낙 낮았던 탓에 ‘숙련공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며 “기술 역량은 물론 소득과 업무 만족도가 높은 노동자가 널리, 또 많이 알려질수록 국내 네오블루칼라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 | 임수미 페데스톨 대표
노동자 많지만 숙련공은 부족…끈기가 ‘필수’
사진설명

임수미 페데스톨 대표는 20년 가까이 작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진성 블루칼라’다. 시카고대 미대 대학원 졸업 후 한때 순수 예술 작가로 활동했지만 회의를 느끼고 생산직으로 전향했다. 그간 관찰 예능 등 TV 프로그램에 여러 번 얼굴을 비춘 덕에, 대중에게도 유명하다.

Q. 순수 예술가에서 블루칼라로 전향한 까닭이 궁금하다.

A. 예술의 기원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작업 과정에서도 비슷한 면이 많다. 순수 예술에서도 용접도 하고 돌도 깎고 미장도 한다. 나는 원래 기술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디지털 등 예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기술 기반 예술 영역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느꼈다.

Q. 현장에서 느끼는 블루칼라 분위기는 어떤가.

A. 작업자 대부분 업무 만족도가 정말 높다. 숙련공 부족으로 수익도 많고 애초에 작업이 좋아 이 일을 시작한 분이 대다수다. 베테랑 노동자는 돈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수입이 많다. 현장 경험이 많은 숙련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젊은 세대 블루칼라 유입 자체는 늘었지만, 요즘에는 2~3년 하다 포기하거나 짧은 경력만 믿고 독립하는 탓에 경험을 쌓기 어려운 구조다.

Q. 숙련공 부족,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A.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 숙련공은 있지만 한국인이 없다. 요즘에는 외국인 몸값이 한국인보다 비싸졌다. 그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또 할 수 있는 사람이 외국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갑을 관계가 바뀌어 오히려 본인들 몸값을 높여 부른다. 일을 훨씬 빠르게 잘하니 비싼 돈을 주는 게 당연하다. 한국인 숙련공이 줄어들면 국내 작업 현장은 ‘주권’을 잃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멕시코인이 사라지면 국가 경제가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외국인이 중요 현장을 모두 꿰차게 되면 한국은 더 심각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Q. 숙련공을 꿈꾸는 이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꾸준함과 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현장을 오래 다녀봐야 경험이 쌓인다는 점에서 ‘꾸준함’이, 작업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소통·협업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성’이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열정과 목표 의식만 있다면 무작정 인력사무소나 현장을 찾아가 일을 달라고 조르는 것도 방법이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1호 (2025.05.28~2025.06.0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