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이미 미국서 일자리 창출
트럼프 IRA 폐지는 쉽지 않아
강화될 기준 선제적 대비해야
中기업과 배터리광물 계약 땐
美 법개정 대비 변경조항 필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를 비롯해 반도체지원법(칩스법) 같은 보조금 정책의 대폭 축소를 공약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구매 보조금의 근거가 되는 IRA가 폐지될 경우 전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중첩 효과를 일으키며 국내 배터리 산업 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IRA 폐지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는다. 감세·국경 강화 등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5조7000억달러의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후법안으로 평가받는 IRA가 폐지되면 약 5000억달러의 보조금 지출이 축소될 것으로 분석된다.
구자민 미국 커빙턴앤드벌링(Covington&Burling) 로펌 변호사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현시점에서 IRA가 폐지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IRA 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상위 10개 의회 지역구 중 8개 지역구가 공화당 소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IRA가 현지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 미국 경제에 선순환 효과를 창출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DC에 본사를 둔 커빙턴앤드벌링은 미국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뛰어난 로비 역량을 발휘하는 로펌이다. 구 변호사는 이곳에서 IRA 자문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법무법인 율촌과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주관으로 17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배터리 산업정책과 IRA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강연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구 변호사는 IRA 전면 폐지보다는 선별적 개정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18명이 지난해 8월 마이크 존스 하원의장에게 제도의 전면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신규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조항(30D)은 개정이 유력하다고 봤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도 자사 경쟁력 강화에 유리하다며 구매 보조금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
우려대상기업(FEOC) 기준을 강화해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는 기업을 줄이는 방안도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FEOC는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북한이 2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 통제하는 외국 기업을 말한다. IRA는 FEOC가 생산, 처리 또는 추출한 원료를 사용한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친환경차 세액공제는 물론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는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항목(45X)에도 함께 적용된다.
구 변호사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조금 정책 개편은 관련 예산 지출 축소와 중국 견제를 위한 공급망 재편을 목표한 것”이라며 “FEOC 기준 강화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칩스법에서 규정하는 FEOC 기준이 IRA보다 엄격하기 때문에 IRA의 기준을 높이는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IRA 개정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중국 회사와 맺는 모든 계약에 ‘법률 변경 조항’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트럼프 정부가 관련 법을 바꿀 경우 앞서 맺은 계약을 해지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만들라는 설명이다. 또 합작법인(JV)을 설립한 경우 중국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아예 한국 기업 지분을 매각할 것을 권유했다.
한국 정부가 국내 배터리 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15일 ‘친환경차·이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대출·보증 등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흑연을 비롯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소재나 광물을 생산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용후배터리법’을 제정해 배터리 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구 변호사는 “폐배터리 재활용은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전 과정을 처리할 경우 중국산 배터리를 활용하더라도 FEOC 지정을 피할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잘 정비한다면 공급망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탄핵 정국으로 정책 차원에서 리더십 공백이 존재하는 만큼 민관 합동으로 아웃리치를 강화할 때”라며 “한국 기업이 진출한 지역의 주지사나 상하원 의원 등을 상대로 우호적 그룹을 만들고, 멕시코·일본 등 한국과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과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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