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법한 혼인관계 외에서 태어난 사생아(私生兒)는 서구 전통에서 오랫동안 이름도 없고 가족도 없었다. 동시에 끊임없는 동정과 경멸, 자선과 학대, 낭만과 천박함의 대상이 됐다. 사생아는 친자로 인지되거나 양자로 입양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세례증서, 입교증서, 혼인증서, 사망증서, 세금명부 등 법적 기록에 죄악과 범죄로부터 비롯된 출생의 낙인이 찍힌 채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미국 헌법과 종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그는 어린 시절 다니던 보수적인 개신교 교회 강단에서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10대에 이르기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서 자신의 집에 입양된 동생 로버트가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성경과 전통에서 제기된 무시무시한 '혼외자의 원칙'에 대한 찬반양론을 따라가보았고, 이 원칙은 일반적인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결론 내린다.
서구 전통에서 혼외자의 원칙은 아브라함과 하갈의 사생아인 이스마엘에 대한 성경 이야기에서 탄생했다. 창세기에 따르면 부와 힘을 가졌지만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은 75세가 되자 대와 유산을 잇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부인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을 취하여 자식을 낳을 것을 종용했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았고 아브라함은 그를 자신의 장자로 여겼다. 그러나 15년 후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낳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막으로 쫓겨났다.
저자는 혼외자의 원칙은 사실 성경의 다른 가르침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의 근거를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게 한다"는 성경적 금언에 두는 것은 오류라고 한다.
여기에서 쟁점이 되는 죄악은 우상숭배이지, 간음이나 음행이 아니다. 이 계명이 혼외자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나아가 성경은 혼외자와 불행하게 태어난 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숭고한 방법으로 오히려 '입양의 원칙'을 가르친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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