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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 이야기] - 춘천 세계주류마켓

  • 김기정
  • 기사입력:2025.05.28 20:55:42
  • 최종수정:2025-05-30 15: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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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고·춘여고의 사랑이 만든 공간

세계주류마켓은 와인 애호가들에겐 막국수, 닭갈비와 함께 춘천을 상징하는 명소가 됐다. 해외에서 와이너리 소유주나 와인메이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꼭 시간 내서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다.

계주류마켓 지하 와인저장고 카브의 모습. 병당 수백만 원대 와인들이 진열, 판매되고 있다.
계주류마켓 지하 와인저장고 카브의 모습. 병당 수백만 원대 와인들이 진열, 판매되고 있다.

“마주 앉아 얼굴 보고 마시니 좋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부부가 와인 잔을 짠하고 부딪힙니다. 두 사람의 눈에서 달달한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 커플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며 남은 와인을 ‘원샷’했습니다. 무대의 주인공은 손종혁, 조명희 부부. 무대는 춘천에 있는 ‘세계주류마켓’입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하는 ‘성지’로 불리는 곳입니다. 강남에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무대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초대형 창고형 와인매장

세계주류마켓은 대지 4000평 위에 2019년 춘천에 들어선 대형 창고형 와인매장입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창고형 와인매장을 만들 때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춘천 세계주류마켓을 방문했을 때가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주차장에 제법 차량이 많았습니다. 400평 규모의 매장과 200평 규모의 별도 창고에는 와인만 4933종, 5만7167병이 전시 또는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한 병에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 와인도 상당수라 병당 10만 원씩만 계산해도 약 6만 병이면 60억 원 정도를 쌓아두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 와인 재고액은 7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와인매장 옆에는 멋들어진 커피숍과 빵집, 레스토랑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장에서 와인을 사가지고 와서 야외테라스에서 마실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판족행사 인기

마침 매장에서는 ‘할인’행사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국내 대형 와인수입업체의 판촉행사입니다. 소위 ‘레이블’ 불량 상품들입니다. 와인 병에 붙어있는 레이블이 살짝 찢어지거나 흠집이 난 제품들로 와인 자체의 품질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소규모 수입업체가 시음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와인을 마실 기회를 제공하면서 판매도 하고 소비자 반응도 본다고 합니다. 세계주류마켓 소비자 시음행사는 와인수입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8월까지 참여업체 스케줄이 꽉 찬 상태라고 합니다. 와인수입업체들이 세계주류마켓에서의 판촉행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마켓 방문객의 80~90%가 ‘목적형’ 소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마켓을 찾기 때문에 바로바로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조명희 세계주류마켓 대표는 “주말의 경우 와인수입업체들이 세계주류마켓에서 시음, 판촉행사를 통해 1000만 원씩 매출을 찍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춘천에 위치한 세계주류마켓 전경.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한 번쯤은 꼭 방문해야 할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부부는 사생활을 보호해 달라며 사진 촬영을 정중히 사양했다.
춘천에 위치한 세계주류마켓 전경.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한 번쯤은 꼭 방문해야 할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부부는 사생활을 보호해 달라며 사진 촬영을 정중히 사양했다.

와인마켓을 왜 춘천에서

다시 등장인물 소개입니다. 춘천 세계주류마켓은 손종혁, 조명희 부부의 삶을 얘기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왜 춘천일까’라는 질문부터 하게 됩니다. 실제 사업구상을 할 때 수도권 지역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수도권도 아닌 춘천에 대형 창고형 와인매장을 만든 이유가 궁금할 수 있습니다. 부부는 춘천 토박이입니다. 손 대표는 춘고, 아내 조 대표는 춘여고를 나왔습니다. 부부이니 상의하며 공동운영하겠지만 손 대표는 주류도매업체 ‘세계주류’의 대표, 조 대표가 세계주류마켓의 대표입니다.

밀러 트위스트캡

손 대표의 삶부터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손 대표의 아버지는 춘천에서 건설자재업을 했다고 합니다. 손 대표는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대신 대학생 때부터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맥주였습니다. 병따개가 필요한 국산 맥주와 달리 손으로 돌려 뚜껑을 따는 트위스트캡 해외 밀러 맥주가 1990년대 중반 처음 한국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경쟁업체의 신고로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정식으로 주류를 받아 강원도 지역 호텔, 유흥업소 등에 공급하는 주류도매업을 시작합니다. 손 대표는 지금도 강원도 지역 주류도매업을 하고 있습니다. 1996년 시작했으니 경력으로만 보면 국내 주류도매업계에선 원로급이라고 합니다.

사진설명

동갑내기 대학생 커플

대학생 손종혁이 맥주를 받아 업소에 배달을 할 때 역시 대학생이던 조명희가 그 옆에 있었습니다. 같이 배달을 하며 연애를 한 겁니다. 둘은 학교는 다르지만 춘천 소재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동갑내기로 손 대표가 삼수를 해서 학번은 조 대표보다 아래입니다. 결혼 후 조 대표는 아이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캐나다에 머물다 한국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마침 한국의 와인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국도 캐나다나 미국처럼 대형 와인매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세계주류마켓입니다.

춘천의 관광명소

세계주류마켓은 와인 애호가들에겐 막국수, 닭갈비와 함께 춘천을 상징하는 명소가 됐습니다. 해외에서 와이너리 소유주나 와인메이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꼭 시간 내서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입니다. 춘천시는 세계주류마켓을 관광자원으로 삼고자 춘천 관광지도에 올렸습니다. 춘천시티투어 버스도 멈춥니다. 부부는 춘천이라는 지역 특성을 살린 음식 개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손 대표는 “춘천이라는 지역색이 살아나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매장 지하에는 고급 와인들을 모아놓은 카브(cave)가 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입니다. 저의 최애 와인인 할란을 비롯해 대부분의 유명 와인을 카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해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레이블로 사용하는 샤토 무통 로칠드도 1985년 빈티지부터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2013년 샤토 무통 로칠드 레이블에 사용됐습니다.

또한 매장 곳곳에 지금은 사라진 조니워커 하우스에 걸려있던 작품과 조형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 사용된 현무암 돌담도 춘천 세계주류마켓에 와 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경북 안동 세트장에서 주로 촬영했는데 현무암은 제주도에서 반출이 어려워 베트남서 수입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촬영세트를 철거하면서 현무암 돌담이 처치 곤란이 됐고 손 대표가 이를 인수해 트럭으로 실어 춘천 세계주류마켓에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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