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돌길, 건축물 훼손 덜 시키는 친환경 소재
비행 피로 위로하는 건축물부터 대항해 시대의 표징까지
낭만 가득한 알파마 지구와 식민지 시대 상징인 벨렘 탑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흔히 ‘낭만의 도시’라 일컫는다. 장장 16시간을 날아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낭만의 도시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낭만을 알기 이전에 먼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유쾌하고도 흥미로운 불편한 진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으며, 마침내 낭만의 도시가 선사하는 경험이 활짝 꽃을 피웠다.

여행은 좋지만 비행은 싫다. 인천발 리스본행 직항노선을 타고서 기내에 갇혀 장장 16시간을 보냈다. 기내서비스로 제공되는 최신 영화를 4~5편은 연달아 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시간은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륙 후 10시간쯤 지나고 나서는 온몸이 완전히 퉁퉁 붓더니 인생에서 처음 겪는 고통이 살 곳곳에 파고 들기 시작했다. 비좁은 기내에서 당장이라도 탈출하려는 욕구가 도통 제어가 되지 않던 순간, 할 수만 있다면 여행을 중단하고 싶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이 좁은 기내에 갇혀 16시간을 보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리스본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인 없는 집과 침대, 책상, 나만이 오롯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 집 떠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컴백 홈을 외치고 싶은 심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남유럽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에 두 발을 찍었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당장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 길. ‘여행작가라고 해서 여행이 항상 즐겁고 쉽지만은 않다, 머나먼 여정은 더욱 그렇다’라며 여러 번 외치며 스스로를 끌어안자, 그제야 방황이 멎으며 심신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유럽에 오면 가장 먼저 낡고 오래된 건물에 마음을 빼앗긴다. 비행의 피로를 조금은 씻어낼 수 있도록 아름다운 주택과 건물을 보며 여행의 흥미를 다시 회복하려 애썼다. 리스본 도심에서 북쪽으로 도보 20~30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곳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일단 관광객들로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호텔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독특한 구조지만 달리 말하면 ‘불편한’ 구조다. 수동식 엘리베이터의 정원은 성인 2명, 짐의 부피가 크다면 1명만 탑승해야 한다. 더욱이 엘리베이터는 7층짜리 건물에 하나뿐.
엘리베이터가 고장날 경우 5층에 있는 방까지 나선형 계단을 어지러이 올라야 한다. 밟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마루바닥은 수명이 다된 듯 앓는 소리를 내지만 호텔 직원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유럽의 변화는 수백, 수천 년을 향해 서서히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리스본에서 불편한 여행을 시작했다.

밑창이 두꺼운 단단한 운동화를 챙겨 신었지만 울퉁불퉁한 돌로 포장된 길을 한 시간여 걷고 나니 발바닥에 고통이 전해진다. 더군다나 리스본의 도심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길은 돌의 높이가 약간씩 달라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그 차이에 따른 불편함이 오롯이 전달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역사와 특성, 매력을 발바닥이 고스란히 느끼는 산책길이 진귀한 경험으로 쌓여간다. 리스본은 지역마다 짧고 긴 가파른 언덕이 많기로 유명하다. 숙소에서 도심까지 약 2킬로미터를 지나며 서너 개의 언덕을 오르내렸다. 그중 하나는 꽤 가파른 경사 길로 등산하듯 헉헉거리며 올랐는데, 매일같이 수도 없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현지인의 일상을 생각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로마제국 시기 로마인들이 상업지역을 확장하고 군사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돌로 포장된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21세기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19세기 중반 아스팔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리스본을 포함해 유럽의 구 시가지에는 여전히 돌길이 깔려 있다. 그 배경은 유럽의 오래된 건물과 연관된다. 돌길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자동차의 진동을 감소시켜 오래된 건축물을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스팔트보다 내구성이 높고 환경 친화적인 자연 소재라는 점 또한 돌길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어찌 보면 리스본에서 돌길은 시대를 아우르는 조화로움과 연결되는 지점이 아닐까. 불편이 아닌 조화로 생각의 방향이 나아가자 발바닥의 고통은 점차 사라진다. 그렇게 돌길을 따라 리스본 중심부 광장 주변에 발길이 닿았다.

로시오(Rossio) 기차역을 중심으로 건설된 여러 개의 역사적 광장과 명소는 대부분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 재도시화된 지역인 ‘리스본 바이샤(Lisbon Baixa)’의 일부다. 규모가 제법 큰 피게이라 광장과 스페인 해방기념비가 있는 헤스타우라도르스 광장을 차례로 지나쳐 강변을 향해 걸으니 18세기에 건축된 개선문이 화려한 위용을 뽐낸다. 6개의 기둥에 조각미술이 특징인 석조 기념 아치 형태의 아우구스타 스트리트 아치는 리스본 대지진으로부터 회복을 상징하는 핵심 랜드마크다. 포르투갈의 대표 탐험가인 바스쿠 다 가마를 비롯한 역사 속 유명 인사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개선문을 빠져나가자 타구스 강변에 위치한 코메르시우 광장이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함으로 다가온다. 광장의 규모가 마치 바다의 드넓은 품을 닮아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아래, 전 세계 각지에서 찾은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인생 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시끌벅적한 군중들 사이에서 벗어나 부둣가로 몸을 피해본다.

18세기 후반 건설된 2개의 기둥과 대리석 계단은 오랜 세월 타구스 강변 중심 부둣가 역할을 해왔다. 과거 리스본으로 들어가는 모든 선박은 이 항구를 통했고, 리스본 시민들은 이 부둣가에서 매주 목욕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나 역시 오늘날 리스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 여겨지는 부둣가의 한쪽 구석에 앉아 한참 동안 여행객 나름대로의 쉼을 즐겼다. 완연한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과 선선한 바람이 훗날 이 부둣가를 떠올릴 때 기억의 커다란 조각으로 사용될 것 같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이 승객들로 분주하다. 주말보다는 꽤 분주한 풍경이지만 서울의 지하철 출근길과 비교하면 절대 상대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흘 만에 서울을 잊고, 만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지하철이 몸에 영 부대낀다. 우리나라의 기차처럼 좌우 두 개로 나뉜 좌석은 마주보는 형태로 놓여 있다. 한데 앞 좌석과의 간격이 너무나 좁아 마주보고 앉은 사람과 무릎이 부딪혀 다리를 사선으로 비스듬히 놓아야 한다. 게다가 앞사람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시선은 핸드폰을 응시해야 한다. 한국과는 달리 지하세계에서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어쩌다 앞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다. 앞사람은 물론 좌우, 뒷좌석까지 서로의 살이 닿을 듯 오밀조밀 모여 있는 형국이다. 그제서야 지하철 내부가 상당히 좁은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남녀는 여기서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까지 상상의 나래가 끝도 없다. 이처럼 리스본에서 불편한 요소를 하나둘 찾을 때마다 그 불편함은 결국 낭만으로 귀결된다. 낡고 오래된 건물에도, 돌길에도, 비좁은 지하철에도 이상적인 삶의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무조건적인 편리를 쫓기보다 일상에서 조금은 불편함을 떠안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낭만을 품을 수 있다면.
이곳 도시가 선사하는 낭만의 최고봉은 알파마 지구에 있다.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상 조르즈성과 리스본 대성당 사이 경사면에 자리한다. 가파르고 좁은 자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지금껏 리스본에서 경험한 모든 불편한 구조와 요소가 이 지역에 종합 선물 세트처럼 관광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알파마 지구가 리스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은 리스본의 전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대화 및 고급화를 추구하는 와중에도 알파마 지구는 고유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

10세기경 무어 시대 상류층의 대표적인 주거 지역으로 인식되었던 이곳은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된 후 노동자 계층이나 어부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바뀌어 갔다. 그 옛날 골목길 어귀에서 어부들이 갓 잡은 생선을 사고파는 풍경은 이제 사라졌지만 가파른 언덕 위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주택가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알파마 지구를 상징하는 모습이다. 12~14세기에 지어진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자리하고, 도시를 상징하는 28번 노란색 트램이 알파마 지구를 관통한다. 비좁은 골목길마다 버스킹 뮤지션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선 음악적 역량을 마음껏 펼친다. 다양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미로 같은 이곳에서 길을 잃는 것은 매번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이자 행운과도 같다.
리스본의 인기 관광 지역을 크게 나누면 앞서 언급한 알파마를 비롯해 바이샤, 에스트렐라, 그라사 그리고 벨렘 지구다. 벨렘 지구를 제외한 4개 지역은 도심에 서로 붙어 있듯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벨렘 지구는 리스본 서부 지역에 속해 있다. 따라서 리스본 여행 동선을 계획할 때 하루나 이틀은 도심, 하루는 벨렘 지구로 정하면 쉽다. 리스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리스본 주변 지역 중 피해가 가장 적었던 것으로 기록된 벨렘 지구. 타구스 강 하구 서쪽에 위치한 벨렘 지구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반까지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포르투갈의 탐험과 유산이 깃들어 있는 장소다.

유럽인 최초로 유럽-인도 직항로를 발견한 바스쿠 다 가마를 비롯해 포르투갈의 여러 탐험가들이 이 지역에서 출발하여 세계 곳곳으로 항해하며 많은 부와 발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당시 전 세계는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다. ‘대항해 시대’로 일컬어지는 개척 시대를 이끈 포르투갈의 전성기는 벨렘 지구에 여러 종교적 건축물과 군사시설 등이 건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역사적 건물과 포르투갈 문화의 현대적 상징이 어우러진 국가 기념물이 밀집되어 있는 이곳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개의 랜드마크는 바로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벨렘 탑이다.
16세기에 건축된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마누엘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이 수도원을 맞닥뜨리면 일단 규모에 압도당하게 되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대항해 시대로 돌아간 듯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1459년 마누엘 1세가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작은 교회를 짓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하여 교회와 수도원을 건립한 것이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1501년 착공에 들어가 100년에 걸쳐 수도원이 완성되었고, 당시 대항해 시대로 축적된 엄청난 부와 자금이 수도원 건립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포르투갈의 황금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도원은 주변 항구를 출항하거나 입항하는 선원들의 기도처로서 역할을 하며 선원들을 위로하고 왕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로 쓰였다.
벨렘 탑은 방어시스템의 일환으로 16세기에 타구스 강 북쪽 가장자리에 요새의 기능을 위해 건설되었다. 당시 포르투갈 탐험가들의 승선 및 하선 지점이자 리스본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장소로서 이 탑은 당시 근대 유럽 초기 세계를 지배한 포르투갈의 식민지 권력을 상징하는, 또한 황금기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벨렘 탑 주변에는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여러 개의 건축물과 상징물이 함께 자리한다. 탐험가의 얼굴 조각상이 새겨진 발견기념비부터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의 전사들을 기리는 기념비 등이 대표적이다. 탐험가가 가진 불굴의 정신과 (지진도 버틸 만큼) 강력한 땅의 기운이 리스본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대항해 시대의 황금빛 역사로 발현되지 않았을까. ‘과거는 현재 속에 살아 숨쉰다’는 진리를 벨렘 지구에서 다시 한번 경험하고 확인한 시간이었다.

[포르투갈 여행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9호(25.05.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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