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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언박싱에 '좋아요'…경험이 사라져간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소비
기술의 발전, 경험을 대체하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 모호해지고
대면과 상호작용은 갈수록 줄어

  • 박윤예
  • 기사입력:2025.05.23 16:54:21
  • 최종수정:2025.05.23 16: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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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 순위에 자주 오르는 유튜버 찰스엔터(구독자 84만명)는 연애 프로그램 '솔로지옥' '환승연애'에 대한 리액션 영상으로 본격 주목받기 시작했다. 편한 잠옷 차림의 찰스엔터가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담은 것이다.

문화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리액션 영상을 보는 것은 직접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는 이제 많은 시간을 우리의 직접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쓴다"며 "리액션 영상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그 영상들이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주기 때문이다. 진짜 경험을 짧은 시간에 엿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액션 영상을 보면서 화면 속의 사람과 함께 그 순간에 거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리액션 영상과 비슷한 장르로 게임 영상, 먹방, 언박싱 영상이 있다.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실재와 가상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두 세계 모두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면 절대 연결이 끊긴 상태로 있을 수 없다. 스마트 가전제품과 알렉사 같은 스마트 스피커도 가정에 이미 침투했다. 오늘날 기술로 인해 매개된 삶은 인간의 경험을 급속하게 변화시켰다. '경험'이란 어떤 장소에 가는 물리적 행위인지, 아니면 디지털로 기념하는 행위인지, 아니면 둘의 조합인지 경계가 애매해졌다.



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어크로스 펴냄, 1만9800원
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어크로스 펴냄, 1만9800원


여행, 음식, 성관계, 예술, 음악, 문학 등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은 극적으로 변했다. 휴대전화, 태블릿, 노트북 같은 기기와 거기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와 앱 등 매개 기술이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끼어듦으로써 인간의 경험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이런 기술을 가장 가까운 커피숍, 미술관, 섹스 상대를 찾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험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판단하는 데에도 이런 기술을 사용한다.

이제는 대면 연결보다 매개된 연결을 선호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 뒤덮여 살지만 사회적 기술(예의범절, 인내, 눈 맞춤)은 점점 약화하고 있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이해와 상호작용도 부족하다. 카페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스마트폰 사용이 증가한 2010년께부터 10대 청소년은 친구들과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감소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연구 결과 10대들은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대부분 온라인에서 하고 있다. 10대 10명 중 6명은 매일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지만, 10명 중 2명만이 친구들을 직접 만나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스마트폰은 사회적 관심을 고갈시킨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객들에게 자신들은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고객들은 휴대전화를 보거나 이어폰을 꽂고서는 계산대 직원들에게는 알은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적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을 만들 방법을 찾는다. 그래야 공적 공간이 견딜 만한 곳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급해졌고, 화가 많아졌다. 로드 레이지(운전자의 공격적이거나 분노한 행동)가 대표적이다. 워싱턴포스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른 운전자에 대해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인정한 사람의 수가 2005년 이후 두 배로 증가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일상생활의 끊임없는 가속화에 있다고 진단했다. 일상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빨리 감기에 익숙해지면서 기다릴 수 있는 것, 기다려야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변하고 있다.

구글의 엔지니어들은 밀리초(1000분의 1초)를 다투는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검색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400밀리초(눈 깜빡이는 정도의 시간)의 지연도 길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존은 페이지 로딩 시간을 100밀리초 단축할 때마다 매출이 1%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속도에 길들여짐에 따라 모든 것에 대해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지고 있다. 우리 몸의 신체적 한계든, 대기 줄에서의 기다림이든, 혹은 지루함이든 말이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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