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린 속 작곡가 겸 지휘자 모리스 라벨(1875~1937)의 외침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극 중 그가 지휘하던 곡은 빈 왈츠를 재해석한 '라 발스'이지만, 이 대사는 곧 세상에 내보일 불후의 명곡 '볼레로'의 운명을, 혹은 라벨 본인의 말년을 내다본 듯 들린다. 지난달 국내 개봉해 예술영화들 사이에서 소소한 입소문을 탄 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의 한 장면이다. 올해 라벨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곡 '볼레로'의 탄생 비화를 담아 흥미롭다.
라벨은 당대에 유럽·미국 연주 여행을 다니며 주목받은 성공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그 와중에 러시아 무용수 이다 루빈스타인의 의뢰로 발레 음악 '볼레로'를 만드는데, 1928년 초연 직후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영화는 라벨이 의뢰인의 압박 속에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다가도 시계 초침, 새의 지저귐, 교회 종소리 등 일상 곳곳에서 아이디어를 낚아채 곡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 1차 대전 참전, 어머니의 죽음, 뮤즈 미시아와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 등 인생의 시련도 스쳐 간다. 정확한 시점 설명 없이 시공간을 오가는데, 라벨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남아 곡에 담겼을 정서인 셈이다. 결국 완성된 볼레로는 단 1분짜리 주제가 17분간 반복되는 특유의 집요함, 점점 쌓여가는 오케스트레이션의 관능미가 폭발할 듯 인상적이다.
이렇게나 성공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재앙'이라니. 성공이 곧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단순한 방정식이 삶에 적용되는 법은 잘 없다. 영화 속에서 라벨은 "노래가 나보다 더 성공해 내 다른 곡들을 잡아먹었다"고, "정작 내가 원하는 곡은 쓴 적이 없다"고 한탄한다. 원래도 예민한 성정이었던 그는 이후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 노쇠해진다. 1937년 뇌 수술까지 받고 이후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6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창의성은 결국 예술가의 영혼과 체력을 갉아먹은 후에야 내면의 균열 속에서 흘러나오는 걸까? 영화는 '천재 중에 괴짜가 많다' 혹은 '괴짜 중에 천재가 많다'는 명제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이 질문은 꽤 오래 인류의 연구 주제였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50년에 썼다는 책 '난제들(Problemata)'에는 '철학, 정치, 시,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은 왜 우울(멜랑콜리)한가?'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교차하는 광기 어린 삶은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올랐고 이야기의 단골 소재가 된 건 물론이다. 어디 라벨뿐이고 음악뿐일까. 베토벤, 슈만, 말러 등 우리가 사랑한 음악가 중 많은 이가 고립, 충동, 우울 등을 품고 세상과 불화한 괴짜였다.

이들 영화는 주인공만 바꿔 끼운 '고뇌하는 천재'식의 전기 영화의 흐름을 따르진 않았다. 명배우가 실존 인물의 환생인 양 영혼을 갈아넣어 선보이는 연기, 서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게 선곡된 음악, 여운을 남기는 심리 연출 등이 섬세하다.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 감정을 영화 속 음악이 대신 말해주는 순간들도 절묘하다. 이 영화 삽입곡 음반이 전 세계서 수백만 장 팔려나간 이유일 것이다. 특히 정신병동에 있는 살리에리가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이야기 끝에 "나는 평범함의 대변자"라고 읊조리는 마지막 장면에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K466 2악장 '로만체'가 흘러나와 엔딩 크레디트까지 이어진다. 동화 같은 선율 후에 깊고 어두운 단조로 반전되는 이중적 면모는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지독한 고독에 시달렸던 모차르트의 삶 혹은 신의 소리를 향한 동경심과 열등감, 죄책감까지 떠안게 된 살리에리의 삶과 연결돼 여운을 남긴다. 미치광이 예술가에게도, 그가 남긴 유산에도 결국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 누구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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