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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 주체 못한 아내, 갑자기 이상행동을…멀쩡하던 그녀가 돌변한 이유는 [2025 칸영화제]

[2025 칸영화제] 린 램지 ‘다이, 마이 러브’

  • 김유태
  • 기사입력:2025.05.19 15:03:32
  • 최종수정:2025-05-19 15: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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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칸영화제] 린 램지 ‘다이, 마이 러브’
프랑스 칸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자 지금 이 순간 세계인이 열광하는 시네마의 준거점입니다. 2025년 제7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인 ‘경쟁 부문(In Competition)’ 진출작과 관련한 소식을 현장에서 빠르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린 램지 감독의 ‘다이, 마이 러브’ 에서 주인공 그레이스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 그녀는 이번 영화를 통해 ‘분노 연기’의 정점을 보여줬습니다. 사진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 당시 모습. [EPA·연합뉴스]
린 램지 감독의 ‘다이, 마이 러브’ 에서 주인공 그레이스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 그녀는 이번 영화를 통해 ‘분노 연기’의 정점을 보여줬습니다. 사진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 당시 모습. [EPA·연합뉴스]

이번 칸영화제에선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의 ‘분노 연기’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전라(全裸)의 노출뿐 아니라,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광기를 연기한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주인공입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이미 ‘분노 연기’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배우이지요. 신작 영화 ‘다이, 마이 러브’에서 주연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는 이번 영화에서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의 극단적인 분노’를 보여줬습니다.

‘다이, 마이 러브’는 ‘케빈에 대하여’를 연출해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린 램지 감독의 신작으로, 올해 제78회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황금종려상 후보작입니다. 출산에 따른 심리적 혼돈과 육아 과정에서 여성만이 느끼는 불안감, 아이를 향한 사랑 이면에서 붕괴되는 모성애를 다룬 ‘다이, 마이 러브’를 18일(현지시간)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의 궁전) 아녜스 바르다 극장에서 살펴봤습니다.

‘다이, 마이 러브’가 상영된 18일(현지시간)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옥상의 야네스 바르다 극장. [김유태 기자]
‘다이, 마이 러브’가 상영된 18일(현지시간)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옥상의 야네스 바르다 극장. [김유태 기자]

주인공은 그레이스(제니퍼 로렌스)와 잭슨(로버트 패틴슨). 갓 결혼한 두 사람은 죽은 삼촌이 남긴 허름한 프랑스 농가 주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너무 낡아 수리가 필요하지만 궁핍했던 두 사람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도착 직후 장난을 치듯 성애를 나눈 두 사람에겐 바로 아이가 생깁니다. 출산의 과정이 이어지고, 그후 6개월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그레이스는 심리적인 불안감과 ‘독박 육아’로 지쳐갑니다. 남편 잭슨은 고된 노동에 지쳐 아내 그레이스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급기야 그레이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잭슨은 입양하기로 약속했던 고양이 대신 강아지 한 마리를 집에 데려옵니다. 육아만으로도 지치는데, 강아지 소변까지 치워야 하니 두 사람은 반목하기 시작합니다. 강아지는 밤낮없이 시도 때도 없이 짖고 집안 거실에 소변을 보는 등 그레이스를 그야말로 미치게 만듭니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한 장면. 그레이스와 잭슨은 프랑스의 농가 주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위 사진은 두 사람이 이사 직후 춤을 추는 장면.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자유로웠습니다. [IMDb]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한 장면. 그레이스와 잭슨은 프랑스의 농가 주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위 사진은 두 사람이 이사 직후 춤을 추는 장면.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자유로웠습니다. [IMDb]

심각하게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레이스는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잠에서 깨는 겁니다. 자유로웠던 삶이 속박된 삶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스의 이상행동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강아지를 총을 쏴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식칼을 들고 아이에게 다가가거나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남편의 어머니가 홀로 사는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집앞 주차장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지?”라고 물으며 ‘카섹스’를 하자고 옷을 벗습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환청과 환몽에 시달리던 그레이스는 자기 주변을 자꾸만 어슬렁거리는 한 남성을 보게 됩니다. 소리가 요란한 바이크를 몰고 다니는 헬멧의 남성이 자꾸만 그레이스의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레이스와 잭슨의 부부관계는 화해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한 장면. 산후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로 그레이스는 서서히 자제력을 잃기 시작하며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IMDb]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한 장면. 산후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로 그레이스는 서서히 자제력을 잃기 시작하며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IMDb]
‘다이, 마이 러브’의 원작소설인 아르헨티나 작가 아리아나 하르비치 ‘Crève, mon amour’ 표지.
‘다이, 마이 러브’의 원작소설인 아르헨티나 작가 아리아나 하르비치 ‘Crève, mon amour’ 표지.

‘다이, 마이 러브’는 아리아나 하르비치의 동명 소설(원제 ‘Crève, mon amour’)을 원작 삼은 작품입니다. 1977년생 아르헨티나 작가인 아리아나 하르비치는 여성이 겪는 사회적 폭력과 개인이 경험하는 아이러니를 핍진적으로 그려낸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겐 저 이름이 다소 낯설지만 아르헨티나에선 꽤 유명한 젊은 작가입니다.

린 램지 감독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의 엄마를 다룬 ‘케빈에 대하여’로 전통적 모성애 신드롬 갇힌 현대 여성의 비틀린 삶을 정면으로 다룬 바 있지요. ‘다이, 마이 러브’는 전통적인 가치관으로서의 모성애가 주는 심리적 고통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케빈에 대하여’와 결이 비슷합니다.

‘다이, 마이 러브’는 린 램지 감독과 아리아나 하르비치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다이, 마이 러브’로 형상화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케빈에 대하여’가 대단히 잔잔한 느낌의 정서가 이어지는 반면, ‘다이, 마이 러브’는 광기에 가까운 분노 때문에 극의 온도가 ‘99도’쯤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뜨겁습니다.

18일(현지시간) 칸영화제 기자들과 만난 제니퍼 로렌스와 로버트 패틴슨. 두 사람은 현실에서 충돌하기 마련인 부부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UPI·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칸영화제 기자들과 만난 제니퍼 로렌스와 로버트 패틴슨. 두 사람은 현실에서 충돌하기 마련인 부부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UPI·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칸영화제 기자들과 만난 제니퍼 로렌스. 그녀는 인생 처음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요. [AF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칸영화제 기자들과 만난 제니퍼 로렌스. 그녀는 인생 처음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요. [AFP·연합뉴스]

상징적 장면도 여럿 나옵니다. 특히 제니퍼 로렌스는 이번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을 꺼리지 않았는데, 모유를 수유한 직후 모유가 뚝뚝 떨어지는 종이에 ‘먹물’이 떨어져 뒤섞이는 은유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숨이 턱 막히는 장면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만 극의 서사적 흐름이 숨가쁘게 이어지기에 그레이스의 혼돈이 관객의 내면으로 옮겨오는 경험까지 가능한 훌륭한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렌스는 린 램지 감독이 연출한 이번 영화에서 분노 연기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다이, 마이 러브’ 최고의 장면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화를 내던 그레이스가 시댁 화장실을 박살 내는 장면일 겁니다. 그레이스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손톱 10개가 다 빠질 정도로 벽을 긁고, 샴푸와 오일을 바닥에 흩뿌리고 세면대를 부수는 등 자해합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그녀는 ‘다이, 마이 러브’ 초연 직후 기자회견에서 “시나리오를 봤을 때 첫째 아이를 낳은 직후였고 촬영 당시에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연기한 캐릭터 그레이스에 더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제니퍼 로렌스는 “아이를 낳는다는 건 모든 걸 바꾼다. 인생 전체를 바꿔놓는 선택”이라고 털어놓으면서도 “배우가 되려면 아이를 갖는 걸 적극 권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존재적인 불안감을 연기하기에 제니퍼 로렌스 캐스팅은 최고의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다이, 마이 러브’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황금종려상을 포함한 올해 칸영화제 수상 결과는 24일(현지시간) 저녁에 발표됩니다(한국시간 25일 새벽).

‘다이, 마이 러브’ 포스터.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로고가 상단에 선명합니다.
‘다이, 마이 러브’ 포스터.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로고가 상단에 선명합니다.
‘다이, 마이 러브’ 프레스 티켓
‘다이, 마이 러브’ 프레스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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