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죽어간다. 그렇게 2024년 한 해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충격과 공포로 얼룩진 2024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새해와 시작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등을 돌린 또 다른 삶이다.’
하지만,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올 한해를 죽음으로써 잊어버리고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 시간을 돌아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건축사이자 작가인 기세호는 ‘적당한 거리의 죽음’이라는 책에서, 일상에서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성찰하는 도시로 파리를 기억한다. 작가의 말처럼, 파리에는 공원 같은 휴식을 제공하는 세 개의 묘지가 유명하다. 보들레르, 모파상, 보부아르가 영면한 몽파르나스 묘지, 팡테온으로 이장되기 전 에밀 졸라, 그리고 드가, 바흐가 잠들어 있는 몽마르트 묘지, 축구장 62개와 맞먹는 44㏊의 면적에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해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묘지로 유명한 페르 라세즈가 그곳이다. 2025년을 향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파리의 묘지, 페르 라세즈(Cimetie… re du Pe… re-Lachaise)를 찾았다.
잎사귀가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애처롭게 드러난 나무 사이로 난 돌길 위로 무덤 사이를 헤쳐나온 바람이 스산하게 스쳐 지난다. 봄날의 따스함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 고국이 처한 현실만큼이나 쓸쓸함이 묘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덤 하나하나는 빼어난 조각처럼 망자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죽음은 현재의 삶과 소통하며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페르 라세즈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인기가 많은 묘지는 아니었다. 파리 중심 교통의 요지인 샤틀레에 위치했던 무명자들의 묘지가 200만 구의 유해로 넘쳐나고 전염병이 창궐하자 파리시는 1765년 파리 시내에 묘지 설치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1780년 이 무명자의 묘지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 유해들은 파리 카타콤으로 이장되고, 몽파르나스, 몽마르트, 파시, 그리고 페르 라세즈의 묘지가 새로 조성된다. 페르 라세즈는 당시로는 파리 가장 외곽에 위치하기도 했지만, 주변이 빈민지역이라 사람들은 이 묘지에 묻히기를 꺼린다. 1804년 6월 18일 5세 여자아이가 처음 매장된 이래, 1805년까지 매장된 유해가 단 44기라는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때, 이런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킨 기발한 ‘죽음’ 마케팅이 한 공무원의 머릿속에서 반짝인다. 바로 사람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간 유명 인사의 유해를 페르 라세즈로 이장하기로 한 것이다. 극작가 몰리에르(Moliere), 우화작가 라 퐁텐(La Fontaine)이 이장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파리 연인들의 우상, 천년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 lard)와 엘로이즈(He… lose)가 함께 이장되면서 관심은 정점을 찍는다. 파리의 연인들은 사랑을 약속하기 위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묘를 찾기 시작했고, 이러한 관심은 1830년 3만 3000기의 유해가 매장될 정도로 페르 라세즈에 대한 산자들의 인식을 바꾸기에 이른다. 지금은 오스카 와일드, 프루스트, 발자크, 들라크루와, 쇼팽, 에디트 피아프, 그리고 이응노 화백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유명인이 가장 많이 영면하는 명소로 자리잡게 된다.
궁금해진다. 어떤 러브스토리이기에 죽음에 대한 인식마저 바꾼 것일까? 11세기 실화에 바탕을 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당대 최고의 명성을 지닌 37세 신학자와 여성의 지위가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에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까지 능통했던 천재적인 17세 여제자의 사랑. 결혼이 금기시되던 성직자였던 아벨라르와 처녀 엘로이즈의 사랑은 선을 넘어 아이가 태어나고 만다. 아벨라르는 미혼모인 엘로이즈를 브르타뉴 자신의 누이의 집으로 보내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엘로이즈의 숙부는 아벨라르를 거세하고 만다. 엘로이즈는 수녀가 되어 평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고, 아벨라르도 성직자로서의 삶을 정진하면서 둘은 평생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오랜 이별의 시간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서로 교환한 7통의 서신이 공개되면서, 비록 시대 상황에 꺾인 그들의 관계였지만 둘 사이에서는 사랑이 얼마나 강렬하게 이어지고 있었는지 온 세상이 알게 된다. 이 러브스토리를 담은 서신도 완결된 책으로 출판되고, 이 스토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 ‘장미의 사랑’은 근대 로맨스 소설의 원형이 될 만큼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러브스토리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에 사랑의 표본으로 알려지게 된다.
평생을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를 잊지 않았던 사랑은 죽은 후 같은 묘지에 합장되며 마침내 함께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들의 사랑에서 용기를 얻고 이 사랑을 숭모함으로써 자신들 사랑의 영원성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죽음이 산자의 삶 속에 자리잡고 산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반전이 하나 더 있다. 이 러브스토리가 당대 최고의 남자와 그에게 순종했던 여자의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파리를 살아간 여성의 삶을 조망한 다큐 작가 그레타 쉴러는 1996년 다큐멘터리 ‘파리는 여자였다(Paris was a woman)’에서 그간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았던 아벨라르의 서신 한 대목에 주목한다. 아벨라르는 자신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당신보다 열등합니다. 내가 당신보다 우월하다고 자신했던 부문에서조차 당신은 나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엘로이즈는 남성의 삶에 기댄 종속적인 여성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학자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은 남녀평등의 아이콘으로, 지금 페르 라세즈를 지키고 있다. 산자들이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죽음의 가치를 더욱 의미있게 성장시킨 거라고 본다. 죽음은 산자들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변화하고 성장하는 생명이다. 2024년 12월 3일 도저히 믿기 어려운 고국에서 들려온 비보에 2024년 자체를 죽음으로써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그 죽음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나간 2024년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그래야 2024년은 우리의 삶에, 우리의 민주주의에, 매우 중요한 해로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