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김세완의 주말경제산책] 관세폭탄 실패 때 트럼프의 선택은

관세로는 무역적자 못 줄여
교역국 환율 강제조정 유력
레이건 때 엔화가치 올린 美
日 30년 장기불황 유발하고
미국 무역적자도 해소 못해
韓 금리인하·재정확대 정책
장기적으로 경기침체 우려
산업구조 개편·수출 키워야

  • 기사입력:2025.05.16 17:44:31
  • 최종수정:2025.05.16 17:44:3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사진설명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 정책 목표는 명확하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다. 주변에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시라. 대학교 2학년 이상의 경제학 전공자라면 가능하다. 관세폭탄 정책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어렵다. 관세를 올리면 수입이 줄어 무역적자가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복잡한 연쇄반응의 시작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한 나라의 무역적자는 그 나라의 투자와 저축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데 투자와 저축이 그대로면 관세를 높인다 해도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 미국의 투자는 강력하고 저축은 미약하다. 또한 교역 상대국이 같이 관세를 높인다면 미국의 수출이 감소하고 환율도 조정되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못한다. 지금 중국과 캐나다가 미국에 대항해 이렇게 하고 있다.

관세폭탄에도 불구하고 1년쯤 지나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트럼프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트럼프 정부는 주요 교역 대상국들의 환율을 강제적으로 조정하려 할 것이다.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낮춰 미국의 수출을 늘리고 상대국 화폐의 가치를 높여 미국으로의 수출을 줄이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지금도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느슨한 형태의 환율 압력을 강제하고 있는데, 바로 매년 발표하는 '환율조작국' 리스트다. 2024년에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독일, 싱가포르 등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관찰대상국에만 포함돼도 해당 국가에는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사진설명
미국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교역 상대국과의 환율 조정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려 한 적이 있다. 소위 '플라자 합의'라는 것인데 말이 합의이지 강제적인 환율 조정이었다. 플라자 합의의 주된 목표 국가는 미국에 거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던 일본이었는데, 일본의 엔화는 달러화 대비 두 배가 비싸진다. 즉 2년 만에 미국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던 도요타 코롤라와 소니 워크맨이 두 배로 비싸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플라자 합의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성공했을까. 엔화의 급격한 절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1980년대 후반까지 오히려 증가했다.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의 소비 성향은 크게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제품을 계속 구매했고, 일본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제품의 품질을 개선해 수출을 지속했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도요타 자동차를 국회 앞에서 망치로 부수는 시위까지 했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도요타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강제적인 환율 조정을 전개한다면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상위 10개국 정도를 대상으로 하려 들 것인데, 그래프에 보이는 나라들이다. 미국이 우리나라 원화의 달러 대비 환율을 조정한다면 우리 경제에는 커다란 충격파가 닥치게 된다. 달러당 1400원 하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간다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도 수익이 보장되는 수출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트럼프 정부의 환율 공격에 대비해 우리 정부는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 정도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편적인 정책 대응은 장기적으로 경기 침체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를 과감하게 시행했지만 가계의 소비 증가를 이루지 못하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자금을 흐르게 해 자산 버블의 불쏘시개가 됐다. 그 이후 1990년대 초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버블의 붕괴를 시발점으로 일본은 지금까지 30년간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그 기간에 반도체, 조선, 가전제품 등과 같은 첨단산업에서 한국에 경쟁력을 넘겨주게 됐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정책 실패를 거울삼아 지금부터 정교하고 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소비자와 같이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절약정신이 강해 저금리와 재정 확대에도 내수를 크게 늘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산업구조 개편에 나서 기술 경쟁력에 기반하는 흔들리지 않는 수출전선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자본시장연구원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세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