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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도, 차도 중국산이 판친다면”...산업 생태계는 ‘멸종위기’ [황인혁칼럼]

외래종 포식자에게 뚫리면 토종기업 생존 보장 어려워 산업 생태계는 국민 생명줄 中 장악땐 경제 주도권 흔들 ‘백련어 교란’ 막을 지혜를

  • 황인혁
  • 기사입력:2025.06.18 13:58:36
  • 최종수정:2025.06.18 13: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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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 포식자에게 뚫리면
토종기업 생존 보장 어려워
산업 생태계는 국민 생명줄
中 장악땐 경제 주도권 흔들
‘백련어 교란’ 막을 지혜를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개최된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중국 하이센스 부스에서 요리사들이 주방 가전 홍보를 위한 피자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개최된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중국 하이센스 부스에서 요리사들이 주방 가전 홍보를 위한 피자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백련어는 최대 1m 넘게 자라는 대형 민물고기다. 중국 양쯔강 유역이 원산지다. 미국은 수질 정화 목적으로 1970년대에 이 어종을 도입했다가 쓰라린 대가를 치뤘다. 미시시피강 전역으로 퍼진 백련어는 플랑크톤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며 개체 수를 급격히 늘렸다.

토종 물고기의 멸종을 우려한 미 정부는 뒤늦게 백련어 퇴치에 나섰지만 이미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 뒤였다. 외래종 침투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산 제품은 한국에게 또 다른 백련어 악몽이 될 수 있다. ‘외국산의 무덤’이라고 불렸던 한국 가전시장에 로봇청소기와 대형 TV 등 중국산 가전의 침투가 만만치 않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토종 기업의 설 자리를 박탈하는 생태계 파괴자가 될까 우려스럽다.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가격경쟁력이 중국산의 무기인데 이제는 품질경쟁력도 매우 위협적이다.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까지 등에 업고 다층적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전자업계의 모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추세면 정부가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해야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산업 생태계는 국민의 생명줄과 같다. 이걸 중국기업에게 넘겨준다는 건 경제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안방 가전이 뚫리고 자동차, 소비재, 유통 등 산업 기반이 연거푸 무너지면 한국의 경제 구조가 중국에 잠식될 공산이 크다.

한 때 수출의 20%를 책임졌던 노키아의 몰락과 함께 핀란드 경제는 된서리를 맞았다. 2013년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어가자 노키아 공장 소재지인 살로와 오울루에서 실업자가 쏟아졌다.

당시 핀란드 총리는 스마트폰을 탄생시킨 애플이 핀란드의 추락을 가져왔다고 한탄했다. 트렌드 변화에 뒤처진 노키아의 실패는 한국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아찔한 시나리오다.

글로벌 기업들의 영토 확장 전쟁은 처절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포화 상태인 자국 시장을 벗어나 제2, 제3의 판매처를 확보해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기 때문이다.

LG가 인도 시장을 공략을 위한 현지법인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구광모 LG 회장이 인도 뉴델리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에서 에어컨 생산 과정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LG가 인도 시장을 공략을 위한 현지법인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구광모 LG 회장이 인도 뉴델리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에서 에어컨 생산 과정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LG전자는 인도법인의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인도 공장 확충에 쓸 계획이다. 14억 인구의 인도는 누가 봐도 기회의 땅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에어컨 보급률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100달러대 보급형 에어컨을 공급해 ‘국민 브랜드’로 인정받겠다는 게 LG의 포부다.

그런데 국내 일각에선 LG전자의 인도법인 상장을 못마땅하게 보는 여론이 있다. 해외법인을 상장하는 건 물적분할과 같은 지분가치 희석을 초래해 LG전자 기존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해석에서다. 그러나 LG전자가 인도 수요를 장악한다면 글로벌 위상과 기업가치는 한층 높아질게 자명하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상장이라면 이는 주가 희석이 아닌 장기적 가치 창출로 연결될 수 있다.

지난 주 이재명 대통령은 5대 그룹 회장과 경제 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고,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방향은 제대로 짚었다. 중요한 점은 어떻게 하면 기업이 신나게 뛸 수 있는지를 제대로 살피는 것이다. 겹규제와 각종 여론 재판으로 기업의 팔다리를 묶으면서 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산 브랜드의 국내 1위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자동차는 현대차, 스마트폰은 삼성, e커머스는 쿠팡이 1등이라고 누구나 쉽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할 수 있다. 차는 BYD(비야디)로, 스마트폰은 화웨이·샤오미로, 유통은 알리·테무로 바뀐다고 생각해보라.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뿌리채 흔들릴 것이다.

차이나 파워의 급팽창에 속절없이 당하는 토종 기업들의 절규는 수년 내로 눈 앞에 다가올 현실이다. 외래종 포식자가 산업 생태계를 독식한 뒤에야 후회한들 상황을 되돌릴 묘안은 난망하다. 그래서 백련어의 교란을 막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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