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김정운칼럼] 그는 왜 ‘비행기 사무장 말투’를 쓸까

의사소통의 심리학 (9) 베이비 토크(Baby Talk)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기사입력:2025.06.20 21:00:00
  • 최종수정:2025-06-20 15:37:49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의사소통의 심리학 (9) 베이비 토크(Baby Talk)
사진설명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낍니다. 경험 많고 노련한 비행기 사무장의 말투는 다른 승무원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일명 ‘비행기 사무장 말투’입니다. 구태여 자신을 소개하지 않아도 말투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선 말끝을 길게 늘이면서 올립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자리에서는 안전벨트를 꼭 매고 계셔야 되에요오~” 혹은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 앉아 계셔야 해에요오~”. 친절한 것 같지만, 뭔가 부담스럽고 왠지 저항하기 힘든 말투입니다. 언젠가부터 커피숍이나 편의점, 혹은 마트의 직원이나 ‘알바’도 이런 비행기 사무장 말투를 씁니다. 아, 생각해 보니 특정 맥락에서 나도 그런 말투를 쓸 때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그런 어투가 튀어나옵니다. 우리 집 강아지들에게도 집 나갈 때 꼭 그럽니다. “갔다가 올게에~ 집 잘 지켜어어~”.

심리학에서는 이런 말투를 ‘베이비 토크(baby talk)’ 혹은 ‘엄마 말투(motherese)’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유아 지향 말투(IDS·Infant-Directed Speech)’라고도 표현합니다. 일상어인 ‘베이비 토크’를 심리학에서는 ‘엄마 말투’라고 표현했는데 성 역할에 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요즘은 중립적 표현인 ‘유아 지향 말투’라고 합니다.

높은 음조(pitch), 과장된 억양(intona tion), 느린 속도(slow tempo), 반복적이고 단순한 문장 구조를 갖는 베이비 토크는 전 세계 엄마가 사용하는 말투로 영유아기의 애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베이비 토크가 성인들 사이에서 쓰일 경우에는 사뭇 그 사회적 의미가 달라집니다. 주로 비대칭적 권력관계나 관리, 통제의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실제로는 규율을 강조하고, 지시에 따르도록 만드는 전략이지요. 장기 요양 환자들을 보살피는 간호사, 간병인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말투입니다. 이를 ‘2차 베이비 토크(secondary baby talk)’라고 합니다.

비행기 사무장 말투는 일반 승무원의 말투와는 조금 다르다. 말끝을 길게 끌며 올린다. 존댓말을 쓰지만 형식은 어른이 아이에게 쓰는 전형적인 ‘베이비 토크’다. 언젠가부터 커피숍이나 마트 종업원도 ‘비행기 사무장 말투’를 쓰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비행기 사무장 말투는 일반 승무원의 말투와는 조금 다르다. 말끝을 길게 끌며 올린다. 존댓말을 쓰지만 형식은 어른이 아이에게 쓰는 전형적인 ‘베이비 토크’다. 언젠가부터 커피숍이나 마트 종업원도 ‘비행기 사무장 말투’를 쓰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 사회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성인들 사이의 베이비 토크 사용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의 ‘미시 권력(micro-power)’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미시 권력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비가시적이고 분산된 권력 형태를 의미합니다. 아주 은밀하게 작동하는 일상의 권력이라는 뜻이지요. 미시 권력은 법이나 국가, 권력기관을 통해 작동하는 전통적 권력과는 달리,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습관, 시선, 몸짓 등을 통해 일상에서 작동하여 점차 법과 제도로 은밀하게 침투하는 권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2차 베이비 토크’ 작동 방식이 푸코의 설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목격된다는 사실입니다. 푸코의 설명은 권력의 은밀한 작동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권력 위계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이비 토크를 사용할 때 해당된다는 이야기지요. 사장이 직원에게, 혹은 간병인이 환자에게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젊은 사람이 노인을 대할 때도 자주 목격됩니다. 이를 ‘유아화(infantiliz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기를 다루듯, 친절한 어투지만 저항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지요.

비행기 사무장, 마트나 편의점 직원은 전통적인 권력관계로 본다면 ‘을’의 위치입니다. 손님은 값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갑’입니다. 그런데 ‘을’ 직종의 종사자가 고객에게 베이비 토크를 사용합니다. 푸코의 미시 권력 작동 방향과 정반대입니다.

‘감정 불편 사회’

이모티콘을 쓰는 이유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서 아주 익숙해진 ‘비행기 사무장 말투’, 즉 ‘2차 베이비 토크’를 이해하는 데 미국 UC버클리대의 사회학자 아를리 러셀 혹실드가 제시한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은 큰 도움이 됩니다. 전통적인 노동 개념은 노동의 범위를 신체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육체노동’이나 인지적 기술을 사용하는 ‘정신노동’으로 한정합니다. 그러나 감정노동은 감정 자체가 노동화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쾌함을 억누르는 승무원이나 친절하게 말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번아웃 상태인 콜센터 직원이 감정노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단순히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와 같은 문구로 감정노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적 노동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자기실현 도구가 되어야 하는 노동이 물건처럼 돈으로 팔고 사는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문제를 ‘노동 소외’라는 개념으로 풀어냈습니다. 자본주의 모순을 ‘소외’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창의력입니다. 일단 임금을 받고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노동자 생산물은 자본가의 것이 됩니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남의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이를 마르크스는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소외감은 자꾸 더 증폭됩니다.

노동을 돈 받고 팔면서 노동자의 노동은 더 이상 창조적인 행위가 아닌 것이 됩니다. 자율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의미지요. 따라서 노동에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자기 상실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를 ‘노동 과정으로부터의 소외’라고 합니다. 소외감이 지속되면,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기회가 상실되면서 ‘자신의 본질로부터의 소외’가 일어납니다. 인간이 기계 부품처럼 되어버려,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가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로 이어진다고 마르크스는 결론짓습니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은 19세기 산업혁명기 프롤레타리아, 즉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임금 노동자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지식노동이나 감정노동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위에 소개한 마르크스의 4가지 형태 노동소외론을 혹실드의 감정노동 개념과 연결해보면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일단, 감정노동자는 평생 느껴왔던 자신의 감정이 일하는 동안 전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지하게 됩니다. 친절한 말투와 미소가 자기 본연의 것이 아니라, 임금을 받고 파는 상품이라고 깨닫는 것은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 됩니다. 일상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더는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규칙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 됩니다.

감정노동자에게 감정 표현은 자율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뉴얼에 따라 표준화된 방식으로 아무 의식 없이 반복되는 행위일 뿐입니다. ‘노동 과정으로부터의 소외’이지요. 반복되는 ‘감정 연기’로 지쳐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진정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의 본질로부터의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자연스러운 정서 표현으로 이뤄지는 타인과의 상호작용 자체도 불가능해집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소외’입니다. 결국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으로 점차 타인과 심리적 거리감을 갖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전화 통화를 기피하는 현상도 이런 감정노동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노동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타인과 감정 표현을 통한 정서 공유를 부담스러워합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통한 SNS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음성 통화로 인한 정서적 부담을 피하려고 합니다. 전화 통화의 경우, 상대방에 따라 감정노동 수준의 ‘실시간 감정 연기’를 해야 하거든요. 이를 혹실드는 ‘감정의 외화(display of emotion)’라고 정의합니다. 조직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표정, 몸짓, 목소리 톤을 ‘연기’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감정을 아주 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이모티콘이나 문자를 사용합니다.

비대면 상황에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소통해야 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직접적인 정서 공유를 통한 상호작용을 기피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소통 방식의 전환이 아닙니다. 정서적 친밀감과 사회적 연대감의 구성 방식 자체에 구조적인 균열이 생긴 것입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감정을 공유하던 상호작용은 ‘비대면 매체를 통해 필터링된 감정 표현(display of emotion)’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은 감정을 연출하는 다양한 방법을 익혔습니다. 결과적으로 갈등을 회피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정서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게 된 것이지요. 이를 ‘감정 불편 사회’라고 정의합니다. 팬데믹 때 쓰던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서 공유의 회피 현상은 자라나는 아동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관해 논의하기 전에, ‘인간은 왜 감정 표현을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초기의 이모티콘. 비교적 단순했던 이모티콘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매우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된다. 직접적인 상호작용에서 감내해야 할 감정 교류의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표정과 목소리, 몸짓을 통한 정서 공유로 매개되는 상호작용의 부재는 ‘상호주관성’의 결핍으로 이어지고, 결국 극단의 집단끼리 분노와 적개심을 야기한다.
초기의 이모티콘. 비교적 단순했던 이모티콘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매우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된다. 직접적인 상호작용에서 감내해야 할 감정 교류의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표정과 목소리, 몸짓을 통한 정서 공유로 매개되는 상호작용의 부재는 ‘상호주관성’의 결핍으로 이어지고, 결국 극단의 집단끼리 분노와 적개심을 야기한다.

인터넷에 ‘어그로’가 넘쳐나는 이유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뉴스나 유튜브, SNS에는 온갖 ‘나쁜 소식’들로 넘쳐납니다. ‘어그로를 끈다’고 하지요. ‘어그로’라는 표현은 ‘aggression(공격성)’의 준말로 한국의 게임 문화에서 만들어진 표현입니다. 온라인상 롤플레잉 게임에서 적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행위를 ‘어그로 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 용어는 온라인상에서 자극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타인의 관심이나 반응을 유도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굳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정보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인식하고 대응해야 살아남습니다. 예를 들어, ‘저기 호랑이가 나타났다(부정적 정보)’와 ‘저기 바나나가 있다(긍정적 정보)’ 가운데서 어느 정보에 먼저 반응해야 살아남을까요? 당연히 ‘호랑이’ 쪽입니다. 바나나는 나중에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즉시 호랑이를 피하지 않으면 바나나를 먹을 기회는 다시 없습니다. 이 같은 인간의 원시적 습관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지금도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2001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 등은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하다(Bad is stronger than good)’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일반심리학 리뷰(Review of General Psychology)’에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부정적 자극이 긍정적 자극보다 더 빨리, 더 오래, 그리고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부정성 우선성(negativity bias)’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300개 이상 심리학 논문을 분석했습니다. 일상의 사건, 인생의 주요 사건, 사회적 네트워크, 인상 형성, 학습, 기억, 감정, 피드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부정적 정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메타 분석을 한 것이지요. 결과는 예측한 대로였습니다.

인간의 부정적 감정(분노, 슬픔, 공포)은 긍정적 감정보다 더 강한 반응을 유발하고, 더 오래 지속됩니다. 부정적 감정 어휘가 긍정적 감정 어휘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정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화가 난다’라는 감정을 ‘짜증 나다’ ‘성질 나다’ ‘열받다’ ‘울화통 터지다’ 등 강도, 지속 여부, 원인에 따라 셀 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긍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좋다’ ‘기쁘다’ ‘즐겁다’ 등으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정적 정보가 진화심리학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사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응용한 영역이 온라인입니다. 온라인 뉴스 헤드라인에 부정적 단어(위기, 논란, 실패 등)가 포함되면 클릭률이 상승하고, 긍정적 단어는 오히려 클릭률이 감소합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극우, 극좌 유튜버들이 그렇게 분노와 적개심의 단어를 쏟아내는 겁니다. 정치적 주장과는 큰 상관없습니다. 클릭률이 바로 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를 시청하며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면 일단 그들의 저의를 의심해야 합니다. 웃음도 마찬가지죠. 풍자로 포장한 비아냥, 조소에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보면서 웃는다고 긍정적 감정이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4호 (2025.06.18~25.06.24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