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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9만원으로 굿샷 [정현권의 감성골프]

  • 정현권
  • 기사입력:2025.05.23 21:00:00
  • 최종수정:2025.05.23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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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와 MIT가 나란히 자리한 이 도시는 지성의 불빛이 밤하늘 별처럼 반짝인다.”

미국 북동부 보스턴을 일컫는 말이다. 매사추세츠 주도로 뉴잉글랜드 지역 중심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이어진다.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보스턴차 사건 현장이다. 과거와 현재가 손을 맞잡은 도시로 벽돌 보도를 걷다 보면 혁명의 숨결과 혁신의 숨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하다.

5월 초부터 한 달 일정으로 보스턴에 사는 딸 집을 방문했다. 전통 도시여서 그런지 모든 시스템에서 서울보다 아날로그 감성이 더 묻어났다.

손녀 등교길에 동행한 초등학교, 보스턴 미술관, 하버드대, 찰스강, 전철, 레스토랑(리걸 씨푸드) 등이 아직도 사람 중심으로 돌아간다. 항구 특유의 청량한 공기에 느린 리듬을 타고 그야말로 디지털 디톡스(Detox)를 체험한다.

아내와 인근 뉴턴(Newton) 지역 퍼블릭 골프장을 찾았다. 이틀 전에 인터넷 예약 후 결제까지 마치고 당일 골프복 차림으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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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웅장한 시설 없이 간단한 프로 숍이 클럽하우스를 겸했다. 중년 남자 한 명이 안내를 도맡았다. 퍼블릭이라 그런지 별도 식사 장소 대신 그냥 음료와 스낵을 파는 정도였다.

라커 룸이나 사우나 시설도 없었고 와서 골프만 치고 가는 시스템이었다. 1인당 그린피는 44달러로 우리나라 돈 약 6만원이었다. 전동 카트 대여료는 21달러였다.

미국 대학생(보스턴 칼리지) 두 명과 조인했다. 캐디는 아예 없어 동반자들은 자기 골프 백을 메고 라운드를 돌았다.

그들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철저히 룰을 지키고 공을 찾는 데에도 진심이었다. 우리 기준으로 시간을 좀 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들 그런 분위기였다.

뒤 팀이 바짝 따라붙으면 패스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 명이나 두 명이 뒤팀으로 따라올 경우이다. 3명 이상만 라운드를 허용하는 우리와 달랐다.

우리나라에선 한두 명이 골프를 해도 최소 3명분 그린피를 낸다. 미국에선 앱에서 사전 조인할 수 있고 여의치 않으면 아예 1인 플레이도 허용된다.

캐디가 없으니 페어웨이에서 거리목을 이용해 각자 남은 거리를 계산한다. 그린에서도 철저하게 혼자 마크하고, 공 닦고, 라인을 읽는다. 모든 플레이가 본인 주도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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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OB(Out of bounds)티가 별도로 없어 공이 코스 밖에 나가더라도 찾아서 치면 된다. 도저히 칠 수 없으면 벌타를 먹고 드롭한다.

유의할 점은 평지인 관계로 코스 경계가 낮아 다른 홀에서 날아오는 공을 늘 조심해야 한다. 각별한 안전의식이 필수다.

이날 1인당 골프비용은 우리 돈으로 9만원 정도였다. 카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6만원에 불과했다. 보스턴 물가가 미국에선 상당히 높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골프비용은 한국 절반 이하이다.

카트는 그린 주변을 제외한 페어웨이 어디나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카트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점이 특이했다. 이래서 대부분 미국 골퍼는 백을 메고 다니거나 혼자 끌고 다니는 카트를 사용한다.

공기 좋은 데에서 5시간 운동하면서 이만한 비용이라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부분 골퍼가 화려하거나 정중한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우리가 헬스장이나 축구장 가는 그런 복장이었다.

마을에서 차로 6분밖에 소요되지 않아 골프 복장 그대로 귀가해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골프를 끝내고 음식까지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보유한 골프장도 있지만 이곳엔 없었다.

골프 대중화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매너나 예의는 있지만 불필요한 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우리나라 파크 골프를 접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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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도 이런 골프 문화가 자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대중에게 외면받을 것 같다. 고비용과 격식 파괴가 정답이다. 보스턴에서 떠오른 한국 골프 대중화를 위한 단상이다.

보스턴은 미국의 대표적인 교육 도시이자 생명공학을 비롯한 최첨단 기업 연구소를 기반으로 한 과학 연구 중심 도시로도 우뚝 섰다. 보스턴시(City of Boston) 인구는 70만명 정도이며 보스턴 도시권(Greater Boston)으로는 약 480만명이다.

도시권 기준 미국 11위이며 북동부에선 뉴욕과 필라델피아 다음이다. 뉴욕과 함께 1850년대 이후 감자 기근을 피해 이민 온 아일랜드 이주민의 주요 정착지로 이들 후세가 지역 사회 주도권을 쥐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백인 비중(47%)이 높은 리버럴한 도시로 나머지를 아시아인, 흑인, 히스패닉 등이 차지한다. 아일랜드계가 많은 만큼 로마 가톨릭 교세가 강하다.

농구 보스턴 셀틱스(2024년 NBA우승)와 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월드시리즈 9회 우승) 연고지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전철은 다소 낡고 오래된 느낌이 강하다.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과 인천공항 직항로가 열려 있다.

[보스턴=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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