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몰랐나. 공약에 다 나와 있는데.”
문재인정부 직후였다.
‘벼락거지’란 신조어를 만든 집값 폭등을 비롯해 탈원전 후폭풍, 기업인 표적 수사 등 5년간 실정을 소재로 대화하고 있었다. 한 지인이 자기는 모두 예상했다며 공약에 다 나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실제로 공약엔 지나간 5년에 대한 실마리가 꽤 있었다.
일단 ‘문재인 10대 공약’에서 1번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다.
그런데 2번이 ‘권력기관 개혁’, 3번이 ‘재벌 개혁’이다. 5년 내내 검찰 개혁을 한다고 좌충우돌하다 결국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단초와, 삼성 이재용·롯데 신동빈 등 기업 총수를 감옥에 보낸 예고가 2번, 3번째로 나와 있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공히 선거 공약의 우선순위는 경제 이슈다. 1992년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높았던 현직인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빌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꺾고 당선된 것이 대표적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민감하다. 그런데 2017년 한국 대선엔 ‘재벌 개혁’과 같은 섬뜩한 단어가 생경하다. 그만큼 당시 탄핵 광풍이 거셌던 것일까. 기업인을 범죄자로 엮던 분위기에 거부감 없이 공약에 넣었을 것이다.
지금 이런 공약을 낸다면 국민은 반감을 보일 것이다. 실제 2025년 대선엔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세 후보에게 이런 공약은 없다. 오히려 ‘기업하기 좋은 나라(김문수 1번)’나 ‘기업 국내 유치(이준석 2번)’ 등 기업을 돕는 내용이 보인다.
‘탈원전’은 어떨까. 10대 공약엔 포함돼 있지 않지만 2017년 발간된 민주당 대선 공약집엔 ▲신규 원전 건설 전면 중단 ▲수명 다한 원전 즉각 폐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및 월성 1호기 폐쇄 등이 나와 있다. 원전 생태계 붕괴는 충분히 예고됐던 셈이다.
문재인 후보 10대 공약에 기업 지원이나 부동산 등 경제와 관련된 내용을 찾기 힘든 것도 흥미롭다. 문재인정부 집값 폭등은 주택 정책을 수요 공급 등 경제 문제 차원보다는 분배 복지 등 사회 문제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노무현 정권 집값 폭등 정책의 주역이었던 김수현이 문재인 정권 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때 예측 가능했다고 본다.
경제 이슈 대신 이례적으로 ‘성평등(8번)’을 10대 공약에 넣은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제 2025년 대선 얘기를 해보자.
일단 압도적인 지지율의 이재명 후보는 최대한 모호함을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1번)’ 등 마치 구호 같은 공약들로 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번은 ‘내란 극복, 민주주의 위상 회복’으로 계엄 관련자들에 대한 분명한 강공을 예고했고, 3번으로 ‘가계·소상공인 활력 증진과 공정경제 실현’으로 분배 과정의 적극적인 개입을 천명했다.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 ‘청년이 크는 나라’를 1번, 2번, 3번으로 정했다. 확실히 양측이 다르다.
부동산 정책은 어떨까. 이재명 후보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선 ▲기본주택 ▲국토보유세 ▲분양가 상한제 강화 등 ‘문재인정부 시즌2’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패배했다. 2025년엔 기본주택과 국토보유세는 철폐하고 세금 규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완전한 태세 전환이다.
이번 ‘장미대선’은 당선자가 즉시 대통령에 취임한다.
공약을 꼼꼼히 봐야 하는 이유다. 며칠 뒤 공약이 바로 일상이 될 수 있으니.
후회하지 않을 선택 기준은 있다.
“it’s the economy, stupid.”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1호 (2025.05.28~2025.06.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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