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법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견제 방법은 반대편에 비해 훨씬 많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권력 주체만 나뉘어선 안 되고 권한 크기도 비슷해야 하는데 현실은 국회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헌법상 국회 전횡을 막을 법원의 견제장치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그친다. 반면 국회 다수당은 탄핵소추 발의로 판사 직무를 정지시키고, 최근 진행된 대법원 청문회를 비롯해 국정조사나 특검도 가능하다. 예산을 갖고 법원을 주무를 수도 있다. 또 대법원장·대법관 임명은 국회 동의를 얻도록 돼 있다. 불체포·면책특권에 숨어 판사의 사생활 의혹 폭로 같은 여론전도 국회는 법원을 능가한다. 개헌을 통한 삼권분립의 질적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법원의 가용 수단이 부족한 데다 판사들에게 삼권분립 퇴행을 막으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 점도 문제다. 오는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후 수세에 몰린 조희대 대법원장을 구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대선 전 판결로 정치 개입 오해를 낳았다며 '법원의 정치적 중립'이 안건이라는 얘길 듣곤 황당했다. 판결을 놓고 대법원장까지 공격하는 것은 일반인도 혀를 찰 일인데, 그 조직원들이 부당성을 반박하기는커녕 민주당 논리를 받들 듯한다니 충격적이다. 물론 법관회의에 동의한 판사들이 적고, 이후 내부 반발로 재판 독립 침해 건도 함께 다루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당이 판사에 대한 탄핵 위협과 '사법 남용 진상규명' 특검법 발의, 대법관 증원 등 사법부를 흔드는 법안들을 밀어붙이지만 법원은 말이 없다. 얼마 전에는 판검사 등이 법을 왜곡해 사법 처리를 하면 최대 10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규정한 법안도 나왔다. 법정 내 재판부 법대(法臺) 높이를 다른 소송 당사자들과 같아지도록 낮추는 법안도 있다.
사법부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언론과 국민의힘 등 외부에선 삼권분립 붕괴 우려를 제기하는데도 당사자인 법원은 침묵 모드다. 법원 대응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5개 재판을 대선 이후로 미뤄준 것뿐이다. 힘 있는 정당에 부화뇌동하는 것인지 조직 위기를 보고도 성명서 하나 내지 않는 모습이 측은할 정도다. 하기야 우리법연구회와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부 평판과 신뢰를 망치는데도 내부 자정을 못할 정도니 방관하는 습성이 고착된 것인지 모른다.
작금의 삼권분립 위기를 놓고 아르헨티나·헝가리 등의 과거 사례와 견주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이제라도 사법부는 결기를 갖고 헌법상 권한이라도 제대로 써야 한다. 민주당 법안이 막장이라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적극 통제해야 한다. 다수당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탄핵소추안을 31회나 발의했는데, 법원이 독립된 판단으로 권한 행사를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위헌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임명부터 국회 입김이 크다는 점에서 소기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 뭔가 결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삼권분립은 쉽게 죽지 않는다.
민주당 폭거에도 국민 저항이 거의 없는 것은 법원이 자초한 일이다. 판결이 정치적 편향 없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줄어든 지 오래다. 국민이 사법부를 개혁 대상으로 본다면 판사들을 위해 광장에 나가줄 리 없다. 그런 점에서 판사는 인공지능(AI)처럼 외부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재판하는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 또 소중한 삼권분립 수호를 남에게 기대려 하지 말고 법원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해야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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