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학에서 ‘권력’이란, 타인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권력은 ‘집중’되는 속성을 가진다. 인위적으로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권력의 개념과 속성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례는 북한 같은 독재 국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얽혀 있고, 이들 장치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권력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독재 국가는 그러한 장치가 없고 오로지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권력 행사만이 존재하기에, 권력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예컨대, 김정은이 자신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거나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히 처형한 사례는 권력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집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그 권력이 오직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구조를 만들고 그러한 상태를 지속시켜야 한다. 그러나 일단 집중된 권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권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곧바로 또 다른 집중의 대상에게로 이전된다. 다시 말해, 권력은 본질적으로 집중되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은 한순간이다.
이처럼 권력의 속성에 대해 길게 언급한 이유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이상한’ 정치 현상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대선 후보 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촌극’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친윤’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국민의힘 내부에서 빈번히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새누리당 친박 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사실상 해체됐다. 그런데 친윤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는 정치학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며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보수 정당 내에서 오랜 정치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는 정통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검사 출신이다. 오히려 정치인을 수사하던 인물이 정치의 ‘정점’에 단숨에 오른, 예외적인 경우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보수의 정통 계승자였다. 그런 박 전 대통령도 탄핵 이후 자신의 계파가 해체되는 것을 경험했는데, 정치 입문 경력이 짧았던 윤 전 대통령의 친윤 세력은 지금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정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권력의 속성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도 탄핵되는 순간 자신의 당내 지지 기반이 무너졌어야 했다. 그런데 친윤이 아직도 건재해 보이니 ‘기이하고’ ‘이례적’ 현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이함’을 굳이 설명하자면, 박 전 대통령과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전후에 취한 전략과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일정한 ‘이념’으로 포장했고, 이를 통해 윤 전 대통령 자신에 대한 추종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당내에서 ‘친윤’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러한 설명에도 한계가 있다. 2024년 4월 11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4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5명 대상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인용에 대해 69%가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잘못된 판결’이라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이러한 여론 환경을 고려할 때, 윤 전 대통령이 아무리 자신의 행위를 이념으로 포장한들, 그에게 많은 추종자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윤 전 대통령 추종자로부터 당 내부에서 친윤 세력이 존속하기 위한 실질적인 ‘힘’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윤 전 대통령과 친윤 세력이 국민의힘 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른 계파와 대립하는 현실은, 분명 ‘미스터리한 현상’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친윤 세력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이 우리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근거로, 대선 후보였던 한덕수 전 총리 주변에 과거 친윤 인사가 집중돼 있었고, 이들이 대선 후보 교체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있음을 들 수 있다. 이번 후보 교체 과정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면 이 같은 의혹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과정은 객관적으로 볼 때도 ‘하자투성이’였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었다.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바로 그 ‘누군가’가 ‘친윤’이다.
‘인위적’으로 후보를 교체하려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후보 교체 이유가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문수 후보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라면, 그러한 후보를 선출한 당원과 정당 전체에 책임이 있다. 단순히 후보를 탓하며 교체하겠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단일화 약속을 깼기 때문에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선 목적이 단일화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공당 경선의 본래적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김문수 후보가 약속을 안 지켰으니 후보직에서 내려와야 한다면, 선거에서 지역 주민과 약속한 것을 안 지킨 국회의원들은 모조리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것 말고도, 김문수 후보와 지도부와의 갈등이 후보 교체 사유라면 왜 그런 갈등이 발생했는지 또한 생각해봐야 한다. 지도부가 무리하게 교체를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갈등이 증폭되지 않았을 테니.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크다. 김문수 후보 교체 결정은 새벽 시간에 이루어졌다. 대선 후보 등록은 5월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 단 한 시간, 그것도 오프라인으로만 32가지의 서류를 접수해야 했다. 새벽에 이 많은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던 후보는 이런 절차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전 교감이 없었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근본적 질문에 직면한다. 정당의 존재 목적이 권력 획득에 있다면,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정당의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다. 다행히 당원들 저항으로 이러한 비상식적 행위는 중단됐지만, 그렇다고 ‘화합’이라는 이름 아래 이번 사건을 덮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규명해야 보수층이 ‘찝찝함’ 없이 보다 확실히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이 정치적 메시지를 내고, 친윤 의원들이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며 대선 경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정황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정치학적으로는 하나의 미스터리다. 경쟁력이 뚜렷하지도 않았던 한덕수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 그토록 집착한 이유도 미스터리다. 이쯤 되면 정당의 이름이 ‘국민의힘’이 아니라, ‘미스터리의힘’으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신율 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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