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도 셰익스피어가 있었다고? ‘중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원나라 시대 ‘잡극’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관한경이다.
‘잡스러운 극’이라는 의미? 중국 전통 희곡인 잡극(雜劇)에 그런 의미가 있긴 하다. ‘난잡하고 저속한 연극’을 뜻한다. 하긴 어느 시대건 서민들이 즐기던 극이라면 웬만하면 다 난잡하고 저속했을 터. 서민의 애환과 희노애락이 담겨진 극을 대충 ‘잡극’이라 불렀다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다고 또 모든 ‘난잡하고 저속한 연극’을 잡극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송나라와 원나라 시절 유행했던 익살맞은 풍자극과 가극을 주로 ‘잡극’이라 부른다. 현대 작가가 난잡하고 저속한 풍자극을 썼다 해도 ‘잡극’이라 부르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잡극’이라 불리는 작품은 송대보다는 대개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 들어온 원나라 시대 작품이다.
이유가 있다. 원래 중국 문학의 정점은 시문이었다. 이태백, 두보 등을 떠올려보면 바로 이해가 될 터. 문인이 주로 학자면서 관료였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료가 되기 위해 글공부를 하고 시를 짓는 연습을 한 이들이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족 입장에서 보면 무식하기 짝이 없던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그런 중국의 전통에 조소를 보내면서 과거 제도를 폐지했다. 관직에 나아갈 길이 요원해진 한족 문인들은 사서오경을 읽고 시문을 짓는 대신 잡극과 통속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기도 했고, 울분에 찬 심경을 풀어내기 위해서기도 했다.
여튼 이런 배경 아래 탄생한 원잡극은 이후 나름 문학적 평가를 받는데, 명말 청초 유명 문학평론가인 김성탄은 “원나라 잡극은 장자, 사기, 이소(전국시대의 초나라 굴원의 작품, 전국시대 대표작으로 꼽힌다) 등과 나란히 중국 문화의 한 선을 구성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시 관한경 스토리로 돌아가서, 북경에서 태어난 한족 관한경은 원 잡극의 최고 대가로 꼽힌다. 관한경이 스스로를 표현한 유명한 문장이 있다.
蒸不爛 (증불란 : 쪄도 쪄지지 않고)
煮不熟 (자불숙 : 삶아도 삶기지 않으며)
捶不扁 (추불편 : 두드려도 펴지지 않고)
炒不爆 (초불폭 : 볶아도 볶이지 않는)
銅豌豆 (동완두 : 출중한 한톨의 완두콩)
관한경의 성정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문장이다. 실제 그런 성정이 관한경 작품에 녹아 있다.
관한경 얘기를 구구절절 한 것은 오늘의 ‘작품’인 ‘몽화록’ 원작자가 관한경이기 때문이다. 2022년 40부작 드라마로 탄생한 몽화록은 관한경이 송나라 시절을 배경으로 쓴 원잡극 ‘조반아풍월구풍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송나라 시대 전당(지금의 항주)에 살던 세명의 여인이 함께 송나라 수도 변경에 와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슬기롭게 개척해나가는, 일종의 성장극이다. 티빙에서 볼 수 있다.
몽골 정권 들어서 벼슬길 막힌 한족이 주로 쓰기 시작

작품을 보다 보면 ‘놀랄 노’자다. 원나라면 우리로 치면 고려 시대다. 그 시절 작가가 그려낸 송나라 여인들이 현대 여성들보다 더 주체적이고 자립적이라니. 특히 주인공 조반아는 ‘절대 꺾이지 않는’다. 세 여성 모두 고위관작의 딸이나 부인도 아니다. ‘사농공상’ 시대 가장 천하게 여겨진 장사를 하는 상인이거나 심지어 관기다. 그런데도 늘 당당하고 지혜롭고 게다가 진취적이다.
세 명의 여성은 원래 관리의 딸이었으나 아비가 왕의 명을 따르지 않은 죄로 8살에 모친과 함께 관기가 됐다 환속한 조반아(유역비 역), 바람 핀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아들도 뺏겨 바다에 빠져 죽으려던 손삼랑, 관기지만 웃음을 파는 기생이 아닌 ‘강남(양쯔강 남쪽) 최고 비파’로 불리는 비파 명인 송인장이다. 손삼랑은 조반아의 친구고, 송인장은 조반아가 아끼는 동생이다. 송인장은 자신을 관기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력인사를 계속 찾는데 그때마다 조반아는 “남자에게 기대지 말고 너만의 가치를 찾으라”고 얘기한다. 이혼당하고 물에 몸을 던진 손삼랑에게는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네가 죽을 이유가 없다.”라며 위로한다. 이후 셋은 서로 도와가며 수많은 고난을 헤쳐나간다.
극 중 조반아는 전당에서 찻집을 운영했고, 도성에 가서도 찻집을 연다. 음식 솜씨가 좋은 손삼랑은 찻집에서 다식을 담당하고, 송인장은 찻집에 온 손님들에게 비파를 연주해준다. 배경이 찻집이고 주인공이 찻집 주인인 만큼 차에 대한 이야기가 시시때때로 나온다. 게다가 배경이 송나라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에서 가장 차 문화가 융성하고 화려했다는 바로 그 송나라. 당연히 차와 관련한 볼거리, 얘깃거리가 풍부하다.
찻집 주인인 조반아가 차를 가져와 따르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차를 따르는 동작이 마치 선녀가 춤추는 듯 유려하다. 다관을 이리저리 돌리다 1m 정도 위에서 차를 ‘조로록’ 따라내는 장면을 보면 차를 따르는 건지, 서커스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다.
이는 중국에서 차를 즐기는 방식을 다예(茶藝)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실제 중국 차 문화에는 예술적 기교가 많이 녹아 있다. 중국에는 ‘다예사’ 자격증이 있다. 다예사는 다양한 차를 각각의 방법에 맞게 잘 우리는 게 주된 역할인데, 다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예술적인 움직임을 익히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중국에서 태동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차 문화는 3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꽃피웠다. 용어부터 완전 다르다. 우리나라는 다례(茶禮), 일본은 다도(茶道)다. 다례에서는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에 대한 예절을 중시한다. 설날 차를 올려 차례를 지내는 것이 다례의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인들은 차를 준비하고 우리고 마시는 과정을 정확하고 정갈하게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수양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전당 제일의 찻집을 운영했던 조반아는 도성에 와서도 손삼랑, 송인장과 함께 ‘반차면’이란 이름의 찻집을 내는데 처음에야 당연히 잘될 리가 없다. 고심하던 셋은 다른 찻집에는 없는 새로운 다식과 비파 연주로 손님을 끌어모은다. 생뚱맞게 굴러온 돌인 ‘반차면’이 장사가 잘 되자 근처 찻집 주인들이 반차면에 쳐들어와 “관기들이 웃음을 팔며 찻집을 해서 찻집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 때 조반아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자고 제의한다.
다예는 예술적 풍류와 서커스 같은 기예·기교 중시
쳐들어온 찻집 대표들 중 최고 고수와 조반아가 차 만드는 실력을 겨루는데 이게 바로 송나라 때 유행했던 풍속인 ‘투차(斗茶)’다.
‘투차’는 주로 거품과 맛과 관계가 깊다. 누가 더 차 거품을 균일하고 우아하게 만들어내는지, 누가 만든 차 거품이 더 오래 꺼지지 않는지, 누가 만든 차의 맛이 더 기품이 있는지를 겨루는 대회였다.

차에 웬 거품? 송나라 때는 주로 단차를 마셨다. 찻잎을 쪄서 절구로 빻은 후 천에 싸서 압착기를 이용해 즙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옆전 모양으로 만들어 딱딱하게 굳힌 게 단차다. 최고의 단차는 ‘용봉단차’인데 용과 봉황 문양 틀로 찍어낸 단차다. 그 단차를 차로 만들어 마시려면 다시 맷돌로 곱게 갈아내야했다. 그렇게 가루로 만든 후 찻잔에 가루를 넣고 물을 부은 다음 팔이 엄청 아프도록 열심히 휘저어 거품이 빽빽하게 올라오게 만들어 마셨다. 송나라에서 ‘투차’는 일종의 풍류였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분들도 조반아가 투차에서 이겼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을 터. 조반아가 만든 차는 거품도 더 풍부했고 더 오래도록 꺼지지도 않았지만, 한가지 더 특출난 점이 있었으니 바로 ‘차백희(茶百戏)’라고도 불렸던 분차(分茶)다. ‘차백희’는 일종의 ‘라떼 아트’라고 보면 된다. 거품을 풍성하게 낸 다음 거품 위에 동물, 사람, 꽃, 산수, 글씨 등 아름다운 문양을 그린 것이 차백희다.




송나라 때 융성했던 ‘투차’와 ‘차백희’ 문화는 그러나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즐기는 이들 입장에서야 풍류일 테지만, 이런 풍류를 즐기기 위해 차를 만들고 팔 빠져라 저어 거품을 내야 했던 이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역이었을 터. 노비 출신으로 단차를 만들고 투차를 하는 과정에서의 고달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명나라 초대황제 주원장은 그래서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이제 명나라에서는 가루차를 마시지 못한다. 잎차만 우려마신다”는 칙령을 내렸다. 그렇게 중국에서 가루차 문화가 사라졌고 투차와 차백희 문화도 사그라들었다.
다시 ‘몽화록’ 이야기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일종의 편견 어린 장면은 ‘몽화록’에서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음모를 꾸미고 모략하는 일은 여자들의 일이 아니다.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진심으로 조언하고 온힘을 다해 끌어준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토록 근사한 여성들이 ‘떼’로 나오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던가. 송나라 그녀들의 투쟁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다. 시대를 거슬러 원 잡극과 관한경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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