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현금 부자’로 손꼽히는 호반건설 행보가 심상찮다. LS그룹 지주사 ㈜LS 지분을 전격 매입한 데 이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잇달아 늘리면서 재계 안팎에서 전운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기반으로 국내 최대 해운 업체 HMM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란 소문까지 나돈다.

한진칼 지분 늘리는 호반
조원태 회장 측과 지분 격차 2% 안팎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올 4월 30일까지 한진칼 주식 37만4519주를 장내 매수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매입 금액은 총 294억원이다. 호반건설 등 호반그룹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17.9%였는데, 이번 매수를 통해 18.46%로 0.56%포인트 높아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5.78%)과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는 총 20.23%로, 호반그룹과의 차이는 1.77%포인트에 불과하다.
호반 측이 공시한 지분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다. 호반은 지난 2022년 사모펀드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 전량을 인수해 2대 주주에 오른 이후, 지분을 꾸준히 늘리면서도 단순 투자 목적임을 강조해왔다. 한진칼 주가는 2022년 호반의 지분 인수 이후 100%가량 올랐고, 호반그룹이 한진칼로부터 받은 배당수익은 지난해에만 46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재계 관측은 다르다. 호반이 머지않아 한진그룹 경영 참여에 나서지 않겠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호반그룹은 2015년 당시 아시아나항공 모기업이던 금호산업 인수를 검토하는 등 꾸준히 항공 산업에 관심을 보여왔다.
주주로서 목소리도 내는 중이다. 호반은 지난 3월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9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증액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회사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한 만큼 경영진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주요 주주로서 살필 예정”이라는 것이 호반 측 입장이었다.
한진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경영권 방어 여력이 있다는 관측이다.
한진칼 지분 구조를 보면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지분 외에도 산업은행(10.58%), 델타항공(14.9%) 등 총 45.71%가량이 한진그룹 우호 지분으로 분류된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2022년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대거 확보했다. 한진칼은 이 유상증자 자금을 활용한 덕분에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미국 항공사 델타항공 역시 대한항공과 20년 넘게 파트너십을 이어온 만큼 한진그룹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산업은행, 델타항공 외에도 5% 미만 우호 지분까지 고려하면 조 회장 측이 이미 50% 이상을 확보한 상태”라며 “조원태 회장과 호반그룹 간 지분 격차가 커서 지분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다만 산은 지분 행보는 오리무중이다. 산은은 ‘통합 대한항공’ 출범에 기여할 정도로 한진그룹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지만, 대선 이후 새 정부 기조에 따라 한진칼 지분을 호반그룹에 전격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반은 한진그룹뿐 아니라 LS그룹과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앞서 호반은 최근 LS그룹 지주사 ㈜LS 지분을 매입하면서 논란을 불러왔다. 수차례에 걸쳐 ㈜LS 주식을 3%가량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대한전선을 계열사로 둔 호반그룹은 전선 업계 경쟁사인 LS전선과 해저케이블 기술 탈취를 두고 대립해왔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케이블 등을 생산하는 공장 설계 노하우가 건축설계 회사인 가운종합건축사사무소를 통해 대한전선에 유출된 정황을 수사 중이다. 가운건축은 LS전선이 강원 동해시에 지은 해저케이블 1~4공장 설계 프로젝트를 맡은 데다 지난해 5월 준공한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공장 설계에도 참여했다. 경찰 수사 결과 ‘기술 유출’로 결론이 날 경우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양측 신경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호반이 ㈜LS 주식을 매입한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LS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기업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고 이사·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회계장부 열람권은 회사 경영진에 대한 형사 고소나 민사소송의 전제 절차로 증거 수집에 활용되거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때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호반 행보가 심상치 않자 한진그룹과 LS그룹은 사실상 ‘반(反)호반동맹’을 맺었다. LS는 채무 상환 자금 조달을 위해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650억원 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를 인수해 5년 내 ㈜LS 주식 38만7635주(전체 주식의 1.2%)로 바꿀 수 있다. 교환사채는 차후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LS는 이번 자금을 2022년 산업은행에서 빌린 1005억원 중 일부를 갚는 데 쓰겠다고 밝혔지만 재계 분석은 다르다. 속내를 보면 호반그룹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이란 해석이다. 이번 교환사채 인수를 통해 대한항공이 LS 자사주 1.2%를 인수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넘어갈 경우에는 의결권이 부활한다. LS 입장에선 유사시 대한항공을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진칼도 최근 사내복지기금에 자사주 0.66%를 출연하며 의결권을 되살려, 호반과의 지분 격차를 다시 2.3%로 벌린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호반에 맞서 한진, LS그룹이 사실상 손을 잡았는데, LS가 경영권 분쟁 중인 한진칼 주식을 확보하는 등 일종의 백기사 연대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고 귀띔했다.
물론 자사주를 활용한 양측의 밀월관계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이 변수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한진·LS그룹은 협업 강화와 관련해 주주이익 극대화를 내세웠지만 현실은 반대”라며 “자사주는 지배주주 자금이 아닌 모든 주주의 돈인 회사의 현금으로 매수한 것이라 지배권 방어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HMM 인수 가능성도
막대한 자금력 활용할지 관심
재계에서는 호반그룹이 머지않아 HMM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HMM 시가총액은 23조원 안팎으로 지난해 2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이 제시한 가격(6조4000억원) 대비 16조원 이상 높아졌다. 다만 호반건설은 자산이 넉넉해 ‘실탄’이 충분하다는 진단이다. 호반의 주요 계열사인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의 현금·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각각 1조3261억원, 1조2892억원에 달한다.
한편에서는 호반건설이 대기업 지분을 잇달아 인수하는 것이 경영권 승계 밑 작업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상열 호반건설 창업주 장남인 김대헌 호반건설 기획총괄사장은 핵심 계열사인 호반건설을,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전무는 또 다른 계열사 호반산업을 담당한다. 호반산업은 국내 전선 업계 2위인 대한전선의 최대주주다. 장녀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은 호텔, 리조트 사업을 맡았는데 항공업에 진출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특히 호반 입장에서는 건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건설업 위주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시급한 상황. 잇따른 지분 매입으로 신사업을 키워 후계 구도 준비에 나섰다는 분석이 팽배하다.
“김상열 창업주가 사실상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만큼 하루빨리 후계 구도를 준비해야 하는데 건설업 비중이 워낙 높은 상황이다. 장남 김대헌 사장이 맡은 건설뿐 아니라 전선, 호텔, 리조트 등 신사업을 계속 키우면서 삼남매 간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해야 하는데, 대기업 지분 매입은 이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인 듯 싶다. 다만 장남조차 아직 30대라 경영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점은 변수다.” 재계의 한 관계자 분석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1호 (2025.05.28~2025.06.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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